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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07월 03일 놀고들있네
  2. 2008년 04월 03일 신문

놀고들있네

딴지 2009년 07월 03일 14시 34분
"해고 대란 없었다" 프레시안
MBC의 비정규직 오보 - 프레시안
해고대란, 정부가 앞장서나 - 프레시안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동아일보 - 이정환닷컴
해고 대란 타령은 거짓말 - 프레시안
조중동의 실업대란 우려는 악어의 눈물 - 미디어 후비기
비정규직법 사태 - 민노씨네

 아침에 들어오는 조선일보를 보고 있자니 화딱지가 난다. 지들이 언제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고 대란이네 어쩌네, 야당 때문이네 어쩌네, 정부 여당은 안타까워 하고 있네 자시구. 놀고들 있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죄. 언론을 믿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 덕에 국민들만 피곤하다. 뭐, 이런 언론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으니 아직도 뻣뻣하게 고개 들고 신문 발행하고 있겠다만은.
 보이는 대로의 세상이 아닌 세상. 아, 이럴때 쓰는 비유는 메트릭스, 동굴, 뭐 그런거 말고 없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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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딴지 2008년 04월 03일 22시 25분
 신문을 챙겨본지도 이제 6년이 되어간다. 논술 준비를 위해 사설만 가끔 봤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던 재수기간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뒤 "똑똑해지고 싶은 열망" 하나로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구라 약간 보태서 지난 6년간 신문을 안 본 날은 딱 하루. 방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누군가 만날 훔쳐가서 "제발 가져가지 말라고" A4용지에 써서 호소하기도 했고 심지어 내 방으로 배달되는 신문에는 "가져가지 마세요" 라는 신문 배달원의 호통이 쓰여있기도 했다. 배달원의 마음좋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인지 그 횟수가 줄었는데 얼마 전 누군가 또 신문을 훔쳐갔고  마침 600원이라는 동전이 없어서 하루를 그냥 보낸 적 말고는,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엠티를 가거나 자리를 비워도 챙겨 두었다가 다음날 두 개씩 보았으니 원씨의 신문 사랑은 지금 생각해도 유별났다. 2004년 쯤에는 경제신문을 추가로 구독해 "하루에 신문 두 개 보기" 를 실천하기도 했었다. 물론 하루에 신문 읽기에만 4시간 정도를 투자하기가 버거워서 약 두 달 정도 하고 그만둔 것 같은데 하여튼, 그렇게 시작된 신문읽기에 매료되어 처음에는 "신문에 글을 쓰는 유명한 사람" 이 되고 싶었다가 나중에는 "내가 만날 쓰자" 라는 각오로 "기자" 의 꿈을 꾸기도 했었다(이 꿈은 약 4년여간 이어졌는데 작년 1년여간의 학생기자단 경험을 통해 내 능력의 부족함을 깨닫고는 작년 5월쯤 그 꿈을 조용히 접고 말았다).
 구독 신문도 다양했다. 중앙일보로 시작한 구독이 어느덧 한겨레를 거쳐 경향신문으로 이어졌고 2년 정도는 한겨레 21과 같이 구독을 했었다. 집으로는 조선일보가 배달되었기에 가끔씩 집에 놓여져 있는 조선일보를 챙겨 보기도 했고 경제 신문은 한국경제를 중심으로 읽었다.
 그렇게 이 신문, 저 신문 탐독하며  '조중동' 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 미디어 오늘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기사가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 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신문의 방향에 따라 사회가 움직일수도 있음을, 그리고 의도된 신문 편집으로 독자를 알게 모르게 움직이게 할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때문에 '하나의 신문' 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색안경을 낀것과 마찬가지의 그릇된 태도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세상과 나를 중개해 주는 신문이, 투명한 유리가 아닌 잿빛 빛깔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2003년도 10월쯤으로 기억한다. 예중이가 선물해 준 책을 통해 머리가 띵 하는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까지 내가 학습해온 모든 '개똥철학' 들이 폭삭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 충격은 나름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여전히 신문은 내 방으로 배달이 된다. 매 달 12000원하는 신문 대금을 한 달, 두 달 밀리면서도 나의 입맛에 맞는 신문을 찾아 읽으며 가끔 집에 내려갈 때는 다른 신문을 선택해 이리저리 들춰본다. 그 사이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려 노력하며 '왜 이런 제목을 냈을까' 혹은 '왜 이런식으로 편집을 했을까' 를 고민하는 일은 나름 즐거움을 선사한다.
 신문의 기사를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럴 경우 나 자신의 머리를 돌려 사안을 판단하기 보다는 신문 편집자들이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 안에 갇혀 맴맴 도는 역할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한다면, 독자들은 그 언론을 감시해야만 하는 작금의 대한민국 신문의 현실. 먹고 살기 바쁜 우리 국민들만 해야하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남에 짜증이 밀려온다. 그래도, 언론이란, 신문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창' 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수년 후에도 이 기사 저 기사를 뒤적거리며 '이게 맞는 기사야?' 라는 물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신문 기자들과 편집자들의 귀를 간지럽히련다. 가끔씩 알게 되는 깨달음의 즐거움이 그 짜증보다는 기회비용이 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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