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들어오는 조선일보를 보고 있자니 화딱지가 난다. 지들이 언제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고 대란이네 어쩌네, 야당 때문이네 어쩌네, 정부 여당은 안타까워 하고 있네 자시구. 놀고들 있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죄. 언론을 믿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 덕에 국민들만 피곤하다. 뭐, 이런 언론들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으니 아직도 뻣뻣하게 고개 들고 신문 발행하고 있겠다만은. 보이는 대로의 세상이 아닌 세상. 아, 이럴때 쓰는 비유는 메트릭스, 동굴, 뭐 그런거 말고 없을라나~
1980년이나 2008년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도 그때는 이런 양심적인 기자들이 있었구나.
한 때 ‘기자’ 라는 직업에 참을 수 없는 매력을 느꼈었다. 결국 2003년부터 지난 2007년까지 ‘기자’ 를 동경하며 신문을 읽고 책을 읽고 뉴스를 보고 그리고 생각을 했다. 세상에 소식을 전하는 일등 기자가 되어 보자 했던 첫 다짐은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그들이 이제껏 보였던 여러 엿같은 행동들을 알게 된 뒤부터 침통함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실’ 은 ‘사실’ 이 아니어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사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한 私설 임을 알았을 때 내 머리를 때리는 울림은 상당했다. 그리고 밀려든 공허함. 그 뒤, 개뿔 잘 이해도 안되는 여러 책들을 뒤지며 다짐했다. 세상에 울리지 않는 소리를 전해보자,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밝히는 기자가 되어보자. 물론 능력부족과 게으름을 탓하며 2007년 5월, ‘기자’ 라는 꿈을 은근슬쩍 마음속 깊은 곳으로 접어 두었지만 그래도 한 켠에서 여전히 쿵쾅쿵쾅 뛰는 마음을 숨기기는 힘이 든다. 나에게 ‘기자’ 는 그랬다. ‘기자’ 가 있음으로 정부를 견제하고 ‘기자’ 가 있음으로 국민의 알권리가 충족되며 ‘기자‘가 있음으로 세상은 밝아지리라 기대했다. ‘기자‘란 자고로 세상을 밝히는 펜을 들고 국민의 가려운 등을 긁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자’ 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여겼다. ‘사명감‘이 없이 그들은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문을 통과한 그 많은 똘똘한 기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똑똑하고, 아는 것 많고, 어디가서도 ‘기자’ 라는 직함 하나로 주변인들의 시선을 다시 한 번 받을법한 그들이 펜을 놓았다. 그들이 기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좁은 문을 통과한 뒤 써대는 기사가 겨우 그것 뿐이라면, 그 똘똘하다는 대가리로 생각할 수 있는 폭이 그것밖에 안된다면 그들이 기자가 되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역시나, 기자의 문턱에 들어갈 수도 없는 범인 원씨같은 인간은 아리송, 저리송, 알수가 없다.
신문을 챙겨본지도 이제 6년이 되어간다. 논술 준비를 위해 사설만 가끔 봤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던 재수기간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뒤 "똑똑해지고 싶은 열망" 하나로 신문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구라 약간 보태서 지난 6년간 신문을 안 본 날은 딱 하루. 방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누군가 만날 훔쳐가서 "제발 가져가지 말라고" A4용지에 써서 호소하기도 했고 심지어 내 방으로 배달되는 신문에는 "가져가지 마세요" 라는 신문 배달원의 호통이 쓰여있기도 했다. 배달원의 마음좋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인지 그 횟수가 줄었는데 얼마 전 누군가 또 신문을 훔쳐갔고 마침 600원이라는 동전이 없어서 하루를 그냥 보낸 적 말고는,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엠티를 가거나 자리를 비워도 챙겨 두었다가 다음날 두 개씩 보았으니 원씨의 신문 사랑은 지금 생각해도 유별났다. 2004년 쯤에는 경제신문을 추가로 구독해 "하루에 신문 두 개 보기" 를 실천하기도 했었다. 물론 하루에 신문 읽기에만 4시간 정도를 투자하기가 버거워서 약 두 달 정도 하고 그만둔 것 같은데 하여튼, 그렇게 시작된 신문읽기에 매료되어 처음에는 "신문에 글을 쓰는 유명한 사람" 이 되고 싶었다가 나중에는 "내가 만날 쓰자" 라는 각오로 "기자" 의 꿈을 꾸기도 했었다(이 꿈은 약 4년여간 이어졌는데 작년 1년여간의 학생기자단 경험을 통해 내 능력의 부족함을 깨닫고는 작년 5월쯤 그 꿈을 조용히 접고 말았다). 구독 신문도 다양했다. 중앙일보로 시작한 구독이 어느덧 한겨레를 거쳐 경향신문으로 이어졌고 2년 정도는 한겨레 21과 같이 구독을 했었다. 집으로는 조선일보가 배달되었기에 가끔씩 집에 놓여져 있는 조선일보를 챙겨 보기도 했고 경제 신문은 한국경제를 중심으로 읽었다. 그렇게 이 신문, 저 신문 탐독하며 '조중동' 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 미디어 오늘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기사가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 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신문의 방향에 따라 사회가 움직일수도 있음을, 그리고 의도된 신문 편집으로 독자를 알게 모르게 움직이게 할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때문에 '하나의 신문' 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색안경을 낀것과 마찬가지의 그릇된 태도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세상과 나를 중개해 주는 신문이, 투명한 유리가 아닌 잿빛 빛깔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2003년도 10월쯤으로 기억한다. 예중이가 선물해 준 책을 통해 머리가 띵 하는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까지 내가 학습해온 모든 '개똥철학' 들이 폭삭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 충격은 나름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여전히 신문은 내 방으로 배달이 된다. 매 달 12000원하는 신문 대금을 한 달, 두 달 밀리면서도 나의 입맛에 맞는 신문을 찾아 읽으며 가끔 집에 내려갈 때는 다른 신문을 선택해 이리저리 들춰본다. 그 사이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려 노력하며 '왜 이런 제목을 냈을까' 혹은 '왜 이런식으로 편집을 했을까' 를 고민하는 일은 나름 즐거움을 선사한다. 신문의 기사를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럴 경우 나 자신의 머리를 돌려 사안을 판단하기 보다는 신문 편집자들이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 안에 갇혀 맴맴 도는 역할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한다면, 독자들은 그 언론을 감시해야만 하는 작금의 대한민국 신문의 현실. 먹고 살기 바쁜 우리 국민들만 해야하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남에 짜증이 밀려온다. 그래도, 언론이란, 신문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창' 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수년 후에도 이 기사 저 기사를 뒤적거리며 '이게 맞는 기사야?' 라는 물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신문 기자들과 편집자들의 귀를 간지럽히련다. 가끔씩 알게 되는 깨달음의 즐거움이 그 짜증보다는 기회비용이 큰가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소위 메이저 언론에서 공격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올블이나 다른 언론을 통해 언론들이 노무현을 공격하는 그 옹졸함과 거짓 기사는 진작 깨달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된다. 시도때도 없이 아는이들에게 이야기하고(친구, 부모님 할 것 없이) 떠벌리고 다녀야 한다. 조선일보의 기사가 왜곡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이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조선일보만을 보는 우리집의 경우 내가 봉하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족 모두는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 를 연발했다. 정보의 부재와 왜곡에서 오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접은지 오래다. 하지만 '언론' 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고 있으면 기가찬다. 참언론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 연신 느끼는 거지만 이는 우리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미 명문대학 프린스턴대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SAT(미 대입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중국계 학생의 프린스턴대 입학이 거절되자 프린스턴대의 대학신문은 이를 풍자하기 위해 "도대체 너희 색깔없는 애들(백인)은 뭐가 문제니?" 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만점 받은 학생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진상 조사 소송을 걸었다 하니 곧 밝혀질 일이겠지만 학보사의 인종차별 희화화 칼럼과, 그리고 그것이 되레 인종 간 대립을 부각시킨다며 "깊은 생각 없이 쓴 모욕적인 글" 이라는 학교측의 반응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로 알려진 홍세화씨가 "똘레랑스는 역사적으로 앵똘레랑스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똘레랑스란 앵 똘레랑스에 대해서 단호히 반대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듯이 인종차별을 반대하며 이에 맞서기로 한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광신주의자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된다" 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인종차별 의식이 공공연히 퍼져있다는 서구 사회의(안가봤기에 순전히 들은 내용임) 부조리한 부분에 대한 정면 돌파는 평가할 일이다. 굳이 이쯤에서 '방법론' 이라는 용어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논설 몇 편, 작문 몇 편, 대자보 몇 개를 통한 알림성 방법 보다는 이처럼 큰 이슈화(지구 반대편의 나까지 알고 있으니!)를 통해 전혀 생각지 않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보다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은 어떨까. 삼성에 목매달고 기업이 지어주는 건물에 아무 비판 없이 감사하며 캠퍼스 정문에 편의점과 보쌈집이 버젓히 간판을 걸고 있는 고려대학교의 경우를 보면 언제나 이런 '방법론' 따위가 문제가 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수여식때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너희들 생각 옳다. 그런데 왜 방법이 그 따위냐" 였고 보건대 통폐합 및 교직원 감금(?)사태때 역시 "너의들 할 말 있으면 하고 사라지면 되지 왜 그따위 방법을 쓰냐" 라는 말이 학내 전반을 차지했다. 통폐합 및 교직원 감금 사태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서울 특별시 4년제 대학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폐합된 학교의 학생을, 그것도 전문대 학생을 어찌 우리와 같은 4년제로 묶으려 하느냐" 라며 반발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의외로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철학박사 수여식 사건 때는 "물론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 노동자 탄압은 잘못된 것이다" 라는 말이 간간히 보였다. 즉 시위를 주도한 이들이 알리려고 했던 사안에 대한 문제는 많은 이들 역시 인식하고 있던 문제였다. 하지만 만약 시위를 주도했던 이들이 방법론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의 말처럼 피켓만 든 채 입 꽉 다물고 시위를 했더라면 과연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알릴 수 있었을까. 교내 기관지화 되어가는 고대신문에서는 아마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 철학 박사 수여식이 성대하게 열렸... 솰라솰라.. 레드 카펫을 걸어 갔으며 오케스트라는 솰라솰라....(한 3, 40줄).... 이건희 회장은 무어무어라고 말했다. 한편, 행사장 근처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 철학 박사 수여를 반대하는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끝-" 으로 마무리 됐을 것이고 나처럼 당시 학교를 휴학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던 학생 같은 경우에는 관련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제쳐두고 단지 철학박사를 받았다, 라는 사실 정보만을 알고 넘어갔을 것이다.
이처럼 강자에 의해 차별을 받는, 혹은 억압 받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자신 역시 불합리한 의식 속에서 약자로 차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정도 차별은 당연한 것이다, 라는 낯뜨거운 생각들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콕 하고 박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 사회를 비판하고, 그 사회의 수준을 나타낸다는 대학 내에서조차 이 정도니 사회로 나오면 말 해 무엇할까.
다소 과격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한국처럼 조중동과 같은 언론들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약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일은 쉽지 않다. 거대 기업 같은 수많은 강자들의 '알고 아파'와 같은 엄살에도 금방 나라가 망할 것 처럼 '저들을 풀어주라!' 고 외치는 언론들은 하지만 조명 받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때문에 프린스턴대 학보사 편집진의 "인종차별을 위한 인종차별" 에대해서, 비록 지구 반대편에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응원의 목소리를 하나 추가하고 싶다. 그들의 문제 제기로 인해 평소 인종차별에 대해 아무런 의식, 생각없이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한 번 쯤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을 갖을 수 있다면, 그들의 과격한(!) 방법론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며 성공한 것이 아닐까.
x-file이란 것이 세상을 '잠깐' 떠들석 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은 연예계 X-file만을 떠올릴 정도로 기억에서 사라졌을 법한 사건 한 가운데에는 아직도 외로이 서서 싸우고 있는 이상호 기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현직 기자인 욕심쟁이님(새 창으로 열기)의 블로그에서 관련 소식을 접했다. 온 나라가 떠들석 해질 이야기였음에 충분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세상은 조용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회,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 사회가, 과연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수가 없다. 세상의 창이 되어야 할 언론이 뿌옇게 낀 서리마냥 흐릿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는 것, 이 나라 국민 모두에게 내려진 불행중의 불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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