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년 10월 16일 핸드폰 요금 (2)
  2. 2008년 09월 17일 대학교 대학생
  3. 2008년 05월 13일 졸업 프로젝트 - 6 (열혈반)
  4. 2008년 03월 19일 인기남들 (4)
  5. 2008년 02월 16일 대성가족
  6. 2007년 05월 24일 연락

핸드폰 요금

일상 2008년 10월 16일 2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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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요금의 국내 통화료가 0원이 나왔다. 핸드폰을 처음 손에 잡았던 때가 2000년 겨울이었으니 핸드폰을 들고 다닌지 8년만에 국내 통화료가 0원이 나오는 기염을 토해냈다. 물론 무료통화 몇 분이 있기에 그랬을테지만 할인금액이 달랑 1630원인 것을 보면, 9월달에 통화를 참으로 안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리 바쁘게 살았었나? 문자 메세지 역시 마찬가지. 학기 중에는 문자를 자주 사용하는 나름 엄지족(?)이었기에 월 8000원에 700개의 문자를 사용할 수 있었던 메세지 프리미엄에 가입했었는데 7월달 부터 8000원 이외의 메세지 요금이 추가되지 않아 9월 중순이 지나서 취소를 했더니 비율로 따져 6933원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문자메세지 이용료가 860원이지만 이것 역시 월 100건의 공짜 문자로 인해 할인되어 0원. 결국 핸드폰의 순수기능인 통화료는 0원이었다(물론 기본요금 제외).
 허나 이상시리 요금이 참 얄밉게 나온 것이 불법다운로드를 위한 소액결제 및 보고서 작성 용 해피캠퍼스 충전(이거 하나 다운 받아보고 다시는 해피캠퍼스니 뭐니 다운 받지 않을테다. 니미럴!), 노바디 배경음악 구매와 선물을 위한 도토리 충전 금액이 꽤 들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왠지 은둔하는 사람마냥 살짝쿵 음산해지는 기분은 뭘까-_-
 여튼, 그래서 7시쯤, 회사에서 나긋나긋한 쉬는 시간을 가지며 친구 몇 명에서 전화를 걸었다. 포스코 면접을 위해 1박 2일 고생한 영배형과 영훈에게, 그리고 멀리 천안에서 고생하고 있을 샤방 석웅에게. 친구들아 미안, 내가 참 소홀했구나.
 근데 니미럴, 왜 아무도 안받는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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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ㄷㄷ.. 2010년 08월 10일 14시 0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걸 자랑이라고.. 전활 한통도 안쓴다는건 그만큼 친구나 인맥이 없다는거고
    캔디폰에 진따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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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대학생

일상 2008년 09월 17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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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오지게 먹고 11시에 과도관 들어가서 벙찐 표정으로 후딱 셀카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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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거하게 한 뒤 가방 찾으러 들른 성원이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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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참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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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좔좔 장두의 요쿠르트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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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변함없는 진뷁


 추석연휴 + 이틀을 더 쉬는 회사 덕분에 평일에 졸업한 학교를 찾는 호사를 누렸다. 변함없는 이들과 함께 거하게 술 한 잔 하고 정신을 차리니 연구실 출근과 오늘까지 마감이라는 이곳 저곳의 원서를 마무리한다며 다들 분주한 모습이다. 아 그리운 대학생활이여.
 회사 생활의 두려움과 적응이 부족해서인지 대학생의 ‘자유분방함’ 과 옷차림, 생활 패턴 자체가 너무도 부럽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따사로운 햇빛이 충만한 교정은 회사 사무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커다란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듯 했다. 흘러내리는 그 무엇인가를 받아마셨는지 괜시리 걷는 다리에도 힘이 불끈거렸고 눈이 마주치는 이들의 생기감 넘치는 표정에 축 쳐졌던 내 피부도 탱글탱글 살이 달아오르는 듯 기름기가(?) 좔좔 흘렀다. 대학생활, 나름 많은 것을 경험했고 공부도 조금 했으며 놀기도 엄청 논 것 같지만서도 이렇게 가까이서 그들과 함께 하고 나면 뭐가 그리 아쉬운지 ‘나도 대학생’ 을 외치게 된다.
 넉넉한 지갑을 들이밀며 12명과 값비싼 소고기를 함께 했고(만원씩 걷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내가...) 이어진 술자리에서 맥주와 소주를 섞어 목구멍에다 들이밀며 꽤 많은 양의 알콜을 흡수하니 정신이 오락가락, 그래도 한껏 달아오른 기분에 역시나 술값은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즐겁다. 그리고 아직 나를 반기는 이가 많은 것도 기쁘다. 바쁜 시간 내서 반겨주는 그들 덕분에 아직도 나의 배는 포만감으로 넉넉한 기분이다. 고마워요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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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프로젝트 - 6 (열혈반)

기록 2008년 05월 13일 12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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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꽃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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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맥주 한 병에 홍조가 돋은 꽃상곤과 진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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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밝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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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과 캐절정 꽃미남 천정환씨. 머리를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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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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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컸으면 키컸으면 진뷁. 아쉽다. 키가 조금만 컸어도.


 담배 한 대 물고 어설프게 녹지 스탠드에 앉아 선배들의 지시를 기다리던 2002년도 신입생 오티. 당시 새로 나온 TIME (담배) 을 방안에 쌓아 놓고 둘러 앉아 너구리굴을 만들며 인사를 하던 바로 그 친구들이 지겹게도, 아직까지 이렇게 같이 붙어 다닌다. 심지어 올 해 부터는 2:2로 짝을 지어 같은 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해 보면, 만약 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나의 대학생활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고등학교 친구 이상, 즉 대학때 만난 친구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한” “이익을 앞세운” 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곤 하지만 이 친구들과는 그런 것 없이, 정말 이것저것 다 보여주며 그렇게 함께 했다. 사진에는 없지만 나의 영원한 당구 라이벌 요달라와 ‘광대가 부르면 꼭 나가야 해요’ 의 주인공 광대 역시. 그리고 처음 만나고 5분 만에 집안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은 전성호군 역시. 아무튼, 덕분에, 대학생활이 너무 풍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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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남들

일상 2008년 03월 19일 22시 52분

 절친한 친구 쌤쌤이는(유남쌩) 언제나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섭섭이 주변 친구들은 다들 정말 잘났잖어. 하나같이 못난 애들이 없어. 근데 섭섭이는.... 띠용~~"
 잘났다는 표현은 쉽게 이야기해 미팅 나가 아무말 않고 딱 봤을 때 여성들로부터 "오, 저 남자 괜찮은데?" 하는 식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외모와 스팩(?)을 이야기하는데 객관적으로 내 주변을 둘러봐도 정말 잘난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고려대 화공과 절정 꽃미남 전정환씨와 4.5학점의 모델 꽃상곤씨, 비상한 머리의 진뷁씨와 딱 봐도 시원시원하게 마음을 여는 요달라군, 말발 하나로 모두를 죽여버리는 쌤군과 장신에 순정만화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후배 오진, 정일우와 같은 외모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두발이, 그리고 그 옆에서 화려한 옷발로 기생하는 원발이, 남자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며 선배나 후배들로부터 '믿음' 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게 하는 승철이 등등등등, 가까운 안산으로 돌아와도 한대 응원단장 출신의 강민이와 해맑은 웃음과 커다란 키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불알친구 석웅이까지, 그 외에도 정말 나보다 뭐든 잘난 친구들과 선배, 후배들이 바글바글거린다(혹 이름이 나오지 않은 둘레인들은 기분나빠 하지 마시라. 빨리 쓰고 tv 보고 싶어서 이러니).
 그래서 언제나 힘든 것은 바로 원씨, 나다. 내 깐에는 '유유상종' 이라는 말로 다 비슷비슷한 애들끼리 모여 놀고 하는거야, 며 위로해 보지만 그 틈 사이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바득바득, 이를 악물고 뛰지 않는 이상, 그리고 나만이 갖고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갈고 닦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적자생존의 공간, 말 그대로 어찌보면 '전쟁' 중이다.
 허나 장점 역시 존재한다. 열심히 살 수 있는 자극을 받고 그들을 통해 '자각' 하며 나의 현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주는 배터리 역할을 한다는 것. 힘들지만 끊임없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구동력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주변에 가득하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못난 사람일수록 잘되면 자만심으로 부풀어 오르고 역경에 처하면 자멸한다" 이 상황에서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말인지는 약간 고민되지만 내가 무언가를 얻고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나 스스로에게 조금의, 아주 조금의 만족을 느끼는 순간 주변에서 날 자극해주는 친구들의 잘난 얼굴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나 역시 그리 못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허허허. 결론은? 내 친구들이 최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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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훈모 2008년 03월 20일 11시 2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유상종 ㅋ

  2. 진복 2008년 03월 20일 13시 00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호섭이 짱!!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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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가족

일상 2008년 02월 16일 19시 53분
 2001년도, 모든 대학으로부터 "입학 불허가" 를 받은 내게 재수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한 군데는 붙을 줄 알았는데(난 그게 나름 내 점수에 맞는 지원이라 여겼건만) 모두 떨어지고 나니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결국 그렇게 유명하다던 대성과 종로에 시험 신청서를 내고 다시 정석을 펼쳐 들었다.
 운이 좋겠도 대성과 종로 모두에 합격한 나는 웹페이지에 뜬 "축 합격" 이라는 글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대학은 다 떨어졌는데 학원은 다 붙다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대성을 선택, 그렇게 시작한 1년 간의 재수생활은 잃은 시간만큼 내게 너무도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개뿔)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는 친구들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싫은 2년 연속, 모든 생활의 중심이 나를 축으로 흘러갔고 부모님역시 '서울애들에게 뒤지면 안되지' 라고 하시며 정말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셨다. 쌍둥이지만 누나라고 학원에 있는 동안 가끔 서울로 찾아와 밥도 사주고 과외를 한다며 용돈도 건내주며 누나 역할을 톡톡히 한 은지에게도, '앞으로 싸우지 말고 누나 대접 잘 해줘야지' 라며 새삼스럽게(정작 실천은 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 오지게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 너무도 소중한 것은 바로 힘든 1년을 함께 한 친구들이다. 많이 울기도 했고 힘들어 하기도 했으며 서로 토닥여 주며 힘든 1년을 그렇게 이겨냈다. 비록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다시 시험을 치른 친구들도 꽤 있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이 좋고 또 계속해서 끈을 이어가고 싶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사람간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어긋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서로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하고 슬픔은 나누면서 그렇게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삶' 아닐까.
 간만에 밤을 새도록 술을 마셨다. 아침 7시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우리들은 '너무도 좋다' 를 연발하며 그렇게 서로의 삶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몸은 축났지만 행복한 시간. 귀찮음을 연발하면서도 연신 만날 날짜를 정하고 연락을 돌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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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07년 05월 24일 21시 00분

 과도관이 비기 시작했다. 책에 머리를 꼴아 박고 30분 정도 죽어 있다가 일어나니 삐질삐질 흘린 땀 때문에 책은 미농지가 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살짝쿵 흐릿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노트북을 열고 네이트온에 접속, 간만에 1촌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눌러가며 일명 '파도타기' 라는 걸 해봤다.
 어라, 이 친구 의사됐네, 얼라리요? 벌써 졸업했네! 아직도 축구하는구나, 얘는 여자친구가 왜 이리 이뻐? 여전하구만, 양아치..낄낄낄, 야, 좋은데 붙었네, 아직 학생인가? 혼자 낄낄 거리며 한참을 돌아 다녔다. 그간 연락 하지 못했던, 아니 둘러보지 못했던 블로그의 일촌(?)들도 방문했다. 모두들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는 그간 뭐가 그리 바쁘다고 가까운 이웃을 놓치고 살았는지 살짝 후회가 된다. 5월달에 만나기로 했던, 많은 친구들과의 만남은 또 언제 추진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5월에는 학교 친구 말고, 단 한명의 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5월 내내 공부를 하지는 않았으니 그 많은 시간을 다 어디다 허비한걸까.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남긴 방명록의 댓글과 많은 글들을 보고 있으니 잔잔한 썩소가 입가에 번진다. 내가 여지껏 살아 오면서 만들어 낸 나의 흔적이자 거울, 그리고 발자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의 소중함이 새삼스럽게 크게 다가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나의 이웃들에게 소홀했던 지난 시간들. 미안합니다. 가까운 곳에 소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잊고 살았어요. 그러면서 외롭다고 징징 거리고 힘들다고 땡깡 부리고 허전하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그런데 우리 언제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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