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9년 07월 21일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2. 2009년 07월 14일 배려
  3. 2009년 03월 10일 어머니
  4. 2008년 09월 17일 사랑의 이면 (2)
  5. 2008년 05월 15일 과도관 생활
  6. 2008년 05월 05일 사랑의 엔트로피
  7. 2008년 04월 11일 감사드립니다
  8. 2008년 04월 01일 설레임
  9. 2008년 02월 09일 개똥철학 - 사랑 (4)
  10. 2007년 01월 30일 여자의 심리학 (2)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독서 2009년 07월 21일 23시 23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심리학 관련 책을 들춰볼 때 마다 괴롭히는 두 가지 생각.
1.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심리학 책 몇 권 끼적거린 것 같고는 생각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꼴에 별에 별 생각을 다 한다는 것. 이미 머릿속에 부유하는 나름의 논리로는 논문 열 편도 더 썼다.
2.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들이 밀며 심리학이란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통계를 이용한 자료를 자주 접해보니) 유독 ‘나’ 에게나 혹은 내가 처한 상황은 조금 더 특수한 경우라며 애써 부정하는 경우(허허, 심리학에서는 이를 ‘긍정의 착각’ 이라고 하더라).
 아무튼, 그래도 심리학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보거나 나의 생각과 그로 인한 행동에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행여 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요런 소갈딱지만한 심리가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남녀의 심리, 연애에 관련된 책을 참으로 오랜만에 접했다. 예전부터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장바구니에 고이 모셔 두었던 것인데 이번 달 20만원어치(!!!!)의 책을 지르면서 살짝 포함시켰다. 내용은 그리 무겁지도 않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연애를 못하거나, 연애로 인해 답답해 하고 있을 사람들이 읽으면 괜찮을 듯 하다.
 쌩판 모르던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함께 주어진 시간을 하나로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상대방을 위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면서도 서로를 더듬어 사랑을 찾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기 보단 우주(!)의 질서 자체가 그렇게 주어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결국, Gibbs free energy를 끌여들여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안정한 상태가 바로 ‘사랑’ 은 아닐까.
 장마가 끝이 나고 내일부터 무더위가 시작될 거라는 소식이다. 아무리 더워도, 찜통 같은 더위에 살이 늘러 붙어 쉰내 풀풀 풍기더라도 연애하고 있는 모두 서로를 꼭 끌어 안은채 행복한 여름을 보내길 빈다.

ps. 덧붙여, 올 여름 휴가는 28년 역사상 최고의 휴가가 될 듯^^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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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독서 2009년 07월 14일 23시 39분
배려의 다섯가지 실천 포인트
1. 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2. 배려는 받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이다.
3. 배려는 날마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4. 매려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5. 배려는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이다.

아스퍼거 :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아스퍼거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스스로를 위한 배려. 솔직하라
너와 나를 위한 배려, 상대의 관점에서 보라
모두를 위한 배려, 통찰력을 가져라

 중고책 서점에서 반값에 구입한 책. 간만에 많은 생각(반성 + 블라블라블라...)을 하게 해 준 책이었다. 얼라 시절(?) "()()는 ()()다" 라는 압축놀이(?)를 즐겨 하곤 했었는데 이유는 어느 순간 내게 다가올지 모를 질문에 대한 그럴듯해 보이는 답을 위해서였다. 즉, 평소에 미리 생각해 뒀다가 나중에 누군가 물어봤을 때 바로 나온 것 처럼, 좀 있어 보이려고 잠들기 전에 돌아가지 않는 짱구 굴려가며 용쓰던 기억이 난다. 낄낄낄.
 그 시절(그래봤자 한 5년 전이다) 내가 생각하고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사랑은 배려다" 라는 한 문장이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생각해 내고 그토록 좋아하던 그 짧은 문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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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일상 2009년 03월 10일 00시 07분
"어머님이 돌아가셨데"

 갑작스레 받은 전화에 7시 40분차를 타고 부리나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오열하는 친구의 누이와 그 옆에서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꼭 다문채 힘겹게 서있던 친구. 작고 다부진 체격으로 고등학교때 은근히 인기가 많았던 놈인데 끌어 안으면 바로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 지병이 있으셨기에 곧 이런 날이 오겠구나, 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겠지만 막상 다가온 어머니의 죽음에 그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누구에게나, 너무도 큰 존재로 손을 내밀고 우리를 끌어안는 어머니이기에 그 존재의 상실은 어쩌면 더욱 크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까워서, 그 큰 사랑을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사랑해서,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서 계실거라 믿어서 그 당연함이 자기도 모르게 체화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머니를, 나 역시 너무 잊고 살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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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면

낙서 2008년 09월 17일 23시 15분
 
50억의 인구중에, 아니 대한민국 5천만의 인구 중 달랑 두 명의 남녀가 만나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는 일이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남녀간에 '사랑' 을 이루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라는 나름의 개똥철학으로 '사랑'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원씨. 사랑이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팍팍한 이 삶에 산뜻한 데오드란테(!)와도 같은 시원함과 깔끔함을 주며 하루하루를 행복케 하는 그런 것 이라며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을 해도 모자르다고 지랄지랄을 하는 예찬론자이지만(물론 이는 남녀간의 연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이면의 가혹한 가슴앓이는 사랑이 갖고 있는 장점만큼의 절대치를 포함한 아픈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뭐든지, 절대선이란 없는 건가.  
 2002년도 초에 나는 말도 안되는 끼적임 속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나를 좋아하는 이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희망고문이라는 박진영의 글을 되새기며 매몰차게 거절했고 얼마 전 내게 고개를 돌린 그 사람을 생각했다. 내게 고개를 돌린 그 사람과 나는 지금 같은 입장이지만 내가 거절한 그 사람과 나 역시 동일한 입장이다. 사랑은 대체 뭘까"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확하진 않지만 희미하고 가느다랗게 잡히는 '사랑' 이란 바로 '진실' 이었다.
 내가 상대를 진실로 바라보고 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실된 시각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사랑'을 잘 할수 있으며 행여 서로가 느껴야 할 아픔을 최소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랑에 소모되는 엄청난 에너지의 양도 고유가시대에 최소화 할 수 있지는 않을까나. 이런 면에서 나는 너무도 서툴렀다. 우선 내 속도 모르고 빨빨거렸으니 뭐.

 짝사랑, 기다림, 두근거림, 실수, 이별, 재결합, 다툼, 차이, 배려등 이런 모든 것들 역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일테다. 서로를 얼마나 보다듬어 줄 수 있는가, 상대의 눈엣가시 같은 행동을 어느 범위까지 안아줄 수 있는가, 흔들리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하는가,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다른 이를 어떻게 할까, 혹은 짝사랑의 가슴앓이와 그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하는 받는이의 안타까움등은 '사랑' 이 갖고 있는 너무도 가혹한 시험이다.
 진실, '거짓이 없고 참되고 바른' 진실만이 사랑의 가혹한 시험을 최소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럴때는 그 '진실' 에 대한 끊임없는 피드백과 함께 말바꿈과 후회를 하지 않을 확고함 역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이란 쉽지가 않은 듯 하다. 때문에 연애를 하며 제 짝을 만나 알콩달콩 함께 하는 일은 더더욱 '일' 이며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사랑이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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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석웅 2008년 09월 18일 17시 42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좋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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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관 생활

원씨 2008년 05월 15일 15시 01분
[##_1C|4707472753.jpg|width="240" height="32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2006년 12월, 복학 2학기째 마지막 시험인 물리화학2 기말고사를 앞두고 밤잠 설쳐가며 공부하다 아침에 쓰러진 모습의 사진이다. 양 옆으로 좌전정환, 우꽃상곤의 사진 구도가 기가 막히며 알파벳 C를 뒤집어 놓은 듯한 불편한 자세 속에서도 단잠을 자고 있는 원씨의 모습이 나름 인상적이다.

 2007년 2학기부터, 슬슬 과도관 생활에서 탈피를 했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둔 동기들의 꾀임에 자주 빠지기도 했고 전공논문과 산학협동강좌등 학점이 아닌 Pass, Fail 과목을 여럿 들으면서 전 학기 보다 조금 널널해진 커리큘럼 탓도 있었다. 취업에 대한 걱정 역시 없었기에 남들처럼 뒤늦게 토익 점수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고 학점도 높지는 않지만 취업의 마지노선인 3.0 을 상회했기에 그닥 걱정도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과도관 생활에서 탈피해 나갔다. 1교시가 없는 날이라도 9시 이전에 도서관에 도착, 책을 깔아 놓고 신문을 본 뒤 알던 모르던, 무작정 공부를 하고 그러다 스르륵 잠에 들기도 하고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의 노가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때 그 시절.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가방이 과도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지난 4학기의 그 때가 살짝 그립기도 하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가방을 싸들고 튀어 나와 맥주 한 잔을 하던가, 원고지를 펼쳐 놓고 만년필로 말도 안되는 글들을 씨부렁 거리기도 했다. 항상 앉는 자리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보니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낯이 익었고 뉴 페이스들이 수두룩 등장했을 때야 "본격적인 시험의 시작이구나" 하며 날짜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보내온 과도관 생활. 얼마 전 전공 시험을 앞두고 오랜만에 찾은 과도관 4층 열람실은 낯설었다. 시험 기간이 아니었음에도 엉덩이를 눌러 앉히며 머리 싸매고 펜을 굴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새로웠고 평소 앉던 좌석 근처에 자리를 잡고 당일 있을 시험 자료를 들추는 내 자신 역시 익숙치 않았다.
 한 시간 반 가량 앉아 있다가 쑤신 양 볼기짝을 촥촥 털며 가방 지퍼를 닫았다. 예전 처럼 오래 앉아 있기도 벅찼다. 그렇게 나는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는 복학생이던, 취업 준비생이던, 고시 준비생이던,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엉덩이의 따듯한 온기를 이어 받아 열심히 펜을 굴릴 것이다. 어쩌면 현 과도관 내 상위 90% 이상에 들지도 모를 나의 학번과 나이를 방패삼아, 나도 덕담 한마디만 하면, "그런 열정을, 어디 가서도 놓지 말고 보다 큰 꿈을 꾸면서 펜을 굴리세요. 후배님들, 제가 먼저 열심히 사회 속에서 터를 닦아 놓고 있겠사와요. 화이팅"
 이제 정말, 졸업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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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엔트로피

전공 2008년 05월 05일 02시 31분
 간만에 집에서 긴 휴식을 취하다가 '연애불변의 법칙, 연애브레이킹' 인가 뭐시깽이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자나 여자가 의뢰를 해서 자기 애인에게 멋지고 예쁜 이성을 접근, 그 때의 상황을 통해 "몰랐던 서로를 이해하고 더욱 사랑을 키워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 라고 떠들어대지만 개뿔, 내 눈에는 그저 몰래카메라와 같은 훔쳐보기를 통한 사람들의 "요상한 욕구 충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이지만 하여튼.
 오늘 본 커플은 결국 그들의 '사랑' 을 이어가는 것을 택했다. 자기 애인의 거짓말과 다른 남성에게 보였던 호의 보다 그간 쌓아온 '사랑' 의 무게가 더욱 컸기에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닐테다. 지난번에 쵸크와 엔트로피 에서 언급했던 그 '엔트로피' 의 증가와 안정적인 Gibbs Free Energy가 자연스레 작용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대로, 하지만 그 흘러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엔트로피의 이론적인 식은 S = Q/T 이다. 변화량을 표현하면 dS = dQ/T 가 되는데 여기서의 T는 '상수' 의 값을 의미하므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 이 식에 기반해 사랑에서의 엔트로피의 변화를 구해보면 우리가 '사랑' 하는 이 사회는 상온값의 온도를 갖기 때문에 약 298K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Q는 증가할까, 감소할까.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을 표현할 때 우리는 종종 '뜨겁다' 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만큼 우리 몸의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무한한 '사랑의 감정' 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또 그것은 상대에 대한 '열정' 으로 나타난다. 말할것도 없이 Q는 증가하고 식에 의해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엔트로피라는 개념 하나로는 물질의 '안정적인 상태'를 표시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역시나 Gibbs Free Energy에 대한 개념을 놓아서는 안된다.
 dG = dU - TdS 일단 T는 상수에 dS의 값은 무한하게 증가한다. 그렇다면 내부 에너지의 변화 보다 뒤의 값인 TdS의 값이 더 크겠는가, 라는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길텐데, 이건 당연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배려, 관심의 크기는 엄청나게 증가한다. 때문에 그 사람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게 되고 자연스레 내가 갖고 있는 욕구나 욕심을 억제하는데 그리 큰 힘이 들지는 않는다. 자연히, 내 몸의 내부 에너지,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변화는 급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말할것도 없이, dU는 음의 값을 갖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dG의 값은 사랑을 하지 않을 때 보다 더욱 낮은 값을 갖게 되고(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나의 욕구 충족에 열심이기 때문에 dU의 값은 양의 값을 가질테다), 결국 사람이 '사랑' 을 택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내가 생각해도 참 이리저리 잘 끼워 맞춘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사랑이 무질서도 증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우리 사회 전체가 무질서도의 극점으로 향하는 지금, '사랑' 이 엔트로피를 낮출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일까. 사랑의 엔트로피가 '증가' 를 의미한다면, 이것은 기존의 무질서도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같은과 친구가 이야기했듯이, 사랑의 엔트로피는 증가가 아닌 감소를 의미한다는 것이 정확한 답이지는 않을까(이 친구의 이론에 따르면 혼란했던 나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랑을 시작하면 엔트로피는 감소한다고 한다).
 이래저래, 솔로인 나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의 엔트로피를 줄이는 것일까 늘리는 것일까. 이런 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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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일상 2008년 04월 11일 14시 25분
 지난 월요일, 화요일에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문자로 발표자료를 만들고 오늘 아침, 무사히 발표를 마쳤습니다. '자기소개 스피치", 구체적 목적이 "자기 소개" 였기에 여러분들이 보내 주신 저에 대한 평을 성격, 단점, 사회생활로 구분해 문장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프로필 역시 살짝(이름과 현재 직업정도) 공개해 공신력(?)을 더했습니다.
 다른 평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무엇보다도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발표" 였다는 평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록 교양과목의 발표지만 여러분들의 도움 덕택으로 생각보다 쉽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게 보내주신 답문의 하나하나 내용을 모두 기록해 두었습니다. 기분이 않좋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혹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제 주변에 언제나 여러분들같은 좋은 '둘레인'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이 있다는 생각으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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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

일상 2008년 04월 01일 13시 21분
 아끼는 후배가 우여곡절 끝에 애인이 생겼다. 그 애인과 나도 좀 아는 사이이고, 둘의 만남이 내가 아니었으면 생기지 않았을 사연 덕분에 둘 사이에서 목에 힘 좀 줘볼라 했더니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저흰 운명인 것 같아요", 그래도 밥은 사야 하지 않겄냐라는 말에 "밥은 선배가 사는거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떡볶이라도 사주겠다고 하니 "지금은 물한잔만 마셔도 넘치는 사랑때문에 배가 부른데 떡볶이 씩이나 사주신다니 고마워요" 라는 답변이 날라왔다. 아무생각 없이 한 5초 정도 지나고 난 뒤 욕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아무튼.
 설레인단다. 내 후배고, 그 애인이고 간에 조금 오버하면 난생처음, 적절히 말하면 만나기 전 그 사람에 대한 설레임으로 정말 기분이 좋단다. 이쯤되면 '행복감'에 젖어 피부도 좋아지고 얼굴도 회춘하며 항상 얼굴에는 미소 가득, 때문에 건강해지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 처럼, 사람이 착해지기 마련이다. 짓궂은 농담에도 바보처럼 '헤헤' 거리는 후배를 보니 솔직히 부러웠다.
 나는 저런 설레임을 느꼈던 적이 언제였던가. 누군가 이야기한 것 처럼 나이 들어 사람을 만나면 '설레임' 은 고사하고 '사람간의 만남' 에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따져 만난다는 말. 사실이 아니라면 구라고 현실이 아니라면 뻥인 동시에 또 그것이 이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정' 없게만 느껴진다. 그만큼 모든 것이 너무도 어렵다는 의미일테다.
 그 후배는 어제 밤 내 방에 잠시 거주하다가 애인과 오늘이 가기 전에 통화를 해야 한다며 부랴부랴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돌아서서 과제를 하는 나는, "힘들어서 어쩌니. 내가 있잖아" 라는 달콤한 말 대신에 "씨발 니미 니 3월달에 논거 생각해봐. 다 돌려받는거야" "과제가 참 니 얼굴 같다" "자업자득이여" 라는 우중충한 목소리만 연신 듣고 있자니 살짝 우울해진다. 아니 이거 만우절 구라다. 오지게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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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철학 - 사랑

원씨 2008년 02월 09일 02시 32분

 27해를 살아 오면서, 이성간에 느낄 수 있는 '사랑' 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느꼈었는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지금 이렇게 홀로인 상태에서, 그리고 어느 누군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두고 가정을 꾸려보지 않은 얼라 입장에서는 '사랑의 완성' 이라는 것에 대해 논하기는 내 자신이 부족한 듯 싶다. 내가 '사랑' 에 대해서는 그럴듯하게 이야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넘어 '사랑은 이런 것이다' 라고 정의하기가 쪽팔리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사랑' 이라는 단어에 꽤 민감했었다. 아무리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단순히 좋아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꽤 까탉스럽게 접근을 했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걔를 좋아했었지 사랑하지는 않았었어" 라는 말로 나의 '사랑'을 끊임없이 아꼈었다. 꼴에 내 사랑은 심오하고 신비스러울 줄 알았었나보다. 허나 이제 고백하는건데,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에게는 간간히 "나는 이번이 진짜 사랑같아" 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정확히 두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물론 상대는 모두 달랐다-_- 잠시 만나던, 아니 연락만하던 그녀와 잘 되가던 고등학교 시절, 수년을 이어온 짝사랑이 결실을 맺는구나, 하는 마음에 독서실에서 친구를 붙들어 앉혀놓고는 "이번이, 나는 첫사랑 같아" 라며 꼴에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었지만 곧 심하게 뒤통수를 두들겨 맞아 두 눈알이 부릅 튀어나온 뒤에는 "이건 사랑이 아니야. 이렇게 금방 잊었잖어" 라며 억지로 나의 '사랑'을 다시 포장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고등학교때만 두 번이 있었으니 재수를 한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얻은 것은 "여자를 믿으면 안된다" 라는 케케묵은 명제가 참이라는 것과 "여자가 나에게 보내는 눈빛은 좋아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내는 것이다" 라는 진리였다. 하지만, 인간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켜 나간다는 사실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재수생활과 대학교 초년생을 거치면서 또 다시 심신의 건강상태를 심각하게 손상받은 이후에는 "이성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서는 안된다" 라는 가슴아픈 결론과 사랑과 '여성' 이라는 동물에 대한 회의를 얻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사랑' 이라는 것에 '후회'를 해서인지, '사랑'을 믿지 않았고 '나는 이제부터 모든 것을 다 주는 그런 사랑은 하지 않아' 라며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던 기억도 난다. 그 뒤 난생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직접 건냈었고 나는 그것이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며 나의 모든 것을 치유하는,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몇 년 후에는 이제 '사랑이 무언지 알겠다' 고 느꼈었다. 하지만 '현실에 충실하자' 라는 말로 '훗날을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의 모습에 비추어 나는 그 사람과의 마지막을 깨달은 그 날까지도,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언제나 상처를 받기만 했던 입장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주는 나쁜남자(!)가 되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사랑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절망뿐이다. 이제는 또 다른 이성을 만난다는 것이 '짐'으로 다가온다. 노총각이 될 기질이 다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치면 진저리가 쳐 지지만 사람을 볼 때 그 사람만을 보지 못하고 이것저것 따지게 되는 것은 이제껏 내가 지어온 죄가 얼마나 큰지, 업보라는 생각까지 든다.
 27해를 살아오면서 원씨의 개똥철학 - 사랑편은 아직도 완성이 안되었다. 사촌 동생의 말마따나 일단 애부터 낳아 놓고 생각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허나 그래도, 아직 마음 한 켠에는 그 어릴 적의 떨림과도 같은 가슴시린 사랑에 대한 '꿈(?)'이 식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난 어쩔 수 없는 놈인가보다. 이제는 한 번 더 실패를 하거나 아픔을 주기가 겁이 나는 나이다.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또 조심스러워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이성을 만나는 것이 힘이 든다.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따로 없다.
 역시나, 사랑은 힘이 든다. 그만큼 얻는 것이 많은 이기적인 것이 사랑이라고도 하지만, 그 과정과 완성이 너무도 힘이 들기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꼬이고 꼬인다. 심오해서 그런가. 쉽지 않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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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yunss 2008년 02월 09일 13시 2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봐친구-

    너 김동률 노래 당장 삭제하고, 2시 32분에는 잠을자도록해...

    라고 내가 말하고 싶지만-
    나 어제 결국 5시 뉘집에서 새벽 알람 울리는 진동까지 듣고도 잠드는거 성공 못했어;;;


    "나는 걔를 좋아했었지 사랑하지는 않았었어" 근데 이말 너무 쎈데
    뇌가 띵- 하고 진동할 정도로 공감됬어 a little bit

    • 원씨 2008년 02월 10일 02시 54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은 내가 잠을 못들고 있어-_-;;
      낮잠을 다섯시간이나 잤거든.. 잠이 올리가 없잖아;;

  2. 훈모 2008년 03월 20일 12시 02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걔를 좋아했었지 사랑하지는 않았었어"

    나도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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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심리학

독서 2007년 01월 30일 15시 10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하하  재밌으시네요”
“어라? 그런데 잼이 어디에 있죠?”


소개팅 나가서 처음 만난 여성에게 “난 띠띠리 디띠야” 와 같은 개그를 날렸을 때, 과연 여성의 심리 상태는 어떠할까. 괜시리 튕기는 것 같은데 적극적으로 나가볼까 어쩔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의 여성의 심리는 어떠할까. 라는 의문으로, 여성의 심리를 알고 좀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다간 책의 두께에 한 번 울고 지루함에 두 번 울며 별 다른 대안이 없음에 세 번 운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들의 심리를 살펴보고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이 책은 많은 여성들의 여러 심리적 행위를 한 층, 두 층, 여러 갈래에서 파고들며 해석한다.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 이라는 책 앞머리의 말처럼 많은 여성들이 외적인 자아와 내적인 자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또 괴로워 한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섭식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해 진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의 팔할이 껍데기 뿐인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속살인지, 판단은 자신이 하겠지만 그 차이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은 존재한다. 여기서 한 가지, 껍데기 뿐인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 한다면야 진실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 결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겠지만 껍데기 뿐인 자신의 모습을 묵묵히 받아 들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것. 하나 더, 이 책에서는 대부분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 요인에서 찾고 있다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나의 의지로 나 자신을 설계하는 것이 그런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나를 사랑하란다. 그리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는 환경 속에서 이런 고통은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여성의 심리를 파악해 작업에 이용하려 했던 독자들은 결국 하나 건진 셈이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또 사랑해 줘야 한다. 그것이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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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은 2007년 02월 02일 01시 37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거 재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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