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회식이 끝난 14일 밤. 종로 한 복판에서 양복을 걸친 건장한 청년 다섯은 캐리어를 끌고 방황하다 결국 찜질방으로 향하고 말았다. 다음날 점심 약속이 잡혔던 원씨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변태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찜질방의 수면실에서 옷을 다소곳이 입고 짬을 내어 눈을 감았다가 담배 연기, 술에 쩌든 몸을 씻고 아침 일찍 찜질방을 나섰다.
캐리어를 맡아주지 않겠다는 주인 아주머니와 약간 실랑이를 벌였기에 좁은 찜질방의 사물함 속에는 구겨진 양복과 캐리어가 사이좋게 어울려 있었으니 행색은 한 마디로 '구려' 그 자체였다.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려는 찰나, 찜질방 앞의 큰길을 막고 있는 대학생 무리가 보였다. 광복절을 맞이해 뭔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길을 기똥차게 막고 있었기에 5열 종대로 서있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야 했다.
턱에는 여드름 세 개가 그랜다이저 합체하듯 기깔나게 혹을 형성하고 있었고 면도를 하지 못한 턱과 인중에는 거무잡잡하고 거센 털들이 삐죽거리며 튀어나와 있었다. 양복은 모두 구겨져 있었고 더불어 바지와 마이 한 쪽 구석에는 언제 스며들었는지 짙은 기름 자국이 함께했다. 머리는 대충 말려서 지마음대로 날라다니고 세수는 했건만 "관리인이 찜질방 영업을 방해하려고 엘레베이터 운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라는 종이와 함께 지하 이층에서 캐리어를 들고 높은 계단을 걸어오다 보니 금새 얼굴은 좔좔, 기름기로 물들기 시작한 상태였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흰색 와이셔츠의 카라 부분은 밤새 흘린 리터단위의 땀으로 인해 검은색 때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더군다나 찜질방 위에는 그 유명하다는 ()()나이트가 있었으니, 이건 누가봐도 밤새 춤추고 놀다가 피곤에 쩐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양아치였다. 그 와중에 5명의 산뜻한 대학생들 사이를 비집다가 발 구르기를 실수하는 바람에 캐리어와 구두 뒤축이 부딪치면서 신발이 반쯤 벗겨지는 아름다운 상황을 연출했으니. 가지가지 했다.
주황색 옷을 입고 있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들에게 항변이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걸으려 했다. 나름 공부도 꽤 잘했고(!?) 이것저것 많은 짓(?)을 한 원씨이며 지금은 대한민국의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연수를 마치고 하루 논 인간이다, 다른 대기업에도 붙었으며 앞에 나가서 떠드는 발표도 그런대로 해낼뿐 아니라 책도 많이 읽으려 노력하고 나름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 머리도 빠삭빠삭 굴리는 인간이다, 뭐 이런것을 알아달라는 듯 내 행동은 거침없었지만 순간 '그렇다면 나는' 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겉모습을 보고 나를 판단하지 말라, 라는 이 말은 비단 내게만 적용하는, 남들이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었을 뿐이다. 외형적인 모습의 부족함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평소 나의 개똥철학은 때문에 거짓이었으며 역시나 나는 '나의 다른 걸 조금 봐줘' 라는 생각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을 나는 단지 내게만 적용하는 모자란 인간이었다.
말을 멋지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허세 좋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멋지게 포장해 남들 앞에 내놓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정작 그 포장을 타인이 보는 곳에서 풀지 않는것, 아니 풀지 못하는 것은 그간 내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청바지가 찢어졌다. 전정환씨에게 과외를 넘기며 받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요새 들어 자주 빨았더니 청바지의 색이 연해지기 시작하며 주머니 밑과 무릎위에 작은 줄을 내놓고야 말았다. 살살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벌려보니 쭈욱, 하며 찢어진 길이가 새끼 손가락 만해졌다. 입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모델 꽃상곤씨는 '그게 리얼 간지이자 패션이야' 라며 멋지단다. 난생 입어보지 않았던 찢어진 청바지를 이제야 입어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 제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찢어진 청바지로 인해 느껴지는 나름의 패션 감각이 아니라 그 속에서 흉물스럽게 밖을 바라다보고 있는 수많은 나의 '털' 들은 아닐까.
아침마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6시 25분에 집 앞을 지나는 버스를 놓치게 되면 하루가 엉망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심지어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 정확히 1, 2분 전쯤에 잠에서 깨곤 한다. 눈을 멀뚱히 뜨고 밀려오는 잠을 억지로 밀어낸다. 곧 알람이 울리고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일어나 핸드폰을 연다. 5시 20분. 10분 정도 눈을 더 붙여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 정도 잔다고 이 잠이 달아날 것 같지도 않다. 다시 누웠다가 까딱하다간 영영 못 일어날수도 있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찬 물로 넓은 모공 이곳저곳을 마사지한다. 머리카락은 떡져있고 흘러내린 머릿기름에 이마와 뺨이 마치 왁스를 발라 놓은 양 번들거린다. 메마른 입안에서는 건조한 악취가 연신 흘러나와 코를 자극하고 미처 깨지 않은 잠 때문에 몽롱한 머리가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다.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스킨을 바르고 안경을 끼고 가방을 매고 신문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겨울 답지 않은 날씨지만 태양의 복사열이 식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발바닥이 차갑다. 잠을 잘못잤는지 목이 뻐근하다. 나이 탓인지, 요즘 들어 부쩍 목 주위가 쉽게 굳는다. 엉덩이가 크고 상체가 긴 체형 덕에 관광버스의 의자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뻣뻣한 목을 우드득 거리며 조작해 그나마 편안한 자세를 찾는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지만 덕분에 올 겨울은 다른 시기보다 꽤 긴 시간을 벌었고 그만큼 잘 활용하고 있다. 이 기회에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볼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느덧 찾은, '아침에 일어나는 기계' 라는 옛 별명에 몸이 다시금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학을 하고 학기 중에는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 훗날 입사할지도 모를 회사의 출근을 앞두고 폴짝 거리며 눈을 뜨는 것을 보니 생각과 긴장의 차이가 낳은 결과가, 아니 그 보다는 마음먹기의 차이가 이처럼 큰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걸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곤 한다. 게으른 성격 탓에 이루지 못했던 많은 일들, 해내지 못했던 많은 일들, 핑계로만 일관했던 많은 일들, 반성문 앞에 놓여 있는 내게 새벽은 반성문을 써야 하는 이유와 모범 답안을 살며시 알려준다. 같이 벌받는 친구처럼, 새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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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는 빠는거 아니다....
난 그거 사고 3년동안 한 3번 빨았다....
그르게.. 우리 어머니께서 쉰내가 난다고 두번 연속 빨기도 하고 방바닥에 던져 놓으면 그냥 빠시더라고. 사타고니도 빵꾸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