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를 마치 1년 처럼 보냈더니 이번주 내내 한 여름의 개처럼 골골 거린다. 아무것도 하기도 싫고 잠만 쳐오는 것이 무기력증에 빠진 듯 만사가 귀찮다. 미친듯이 골머리 때리고 대가리 휘둘렸던 탓에 원씨라는 인간 자체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그대로 정지. 그런데도 귀찮지 않은게 바로 술. 올 들어 술을 참 자주 마셨는데 회사에 입사한 뒤 건강 검진을 받으며 "일주일에 술을 얼마나 드십니까" 라는 질문에 "한 달에 두세번인데.." 라며 0.5회를 찾고 있었던 1년 전에 비하면 세상만사 휙휙. 올 해 들어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필수였고 옵션으로 서너번은 마셨으니 이제 건강검진 하면 자신있게 1회 이상에 체크해도 되겠다. 더 이상 고민 안할테니 다행(응?). 술을 홀짝홀짝 자주 마시다 보니 오늘처럼 일찍 퇴근하고 방바닥에 늘러 붙어 있는 날이면 한 쪽 다리가 떨리면서 소주가 땡긴다. 갈비살 노릇하게 연탄불에 구워 고춧가루 덕지덕지 붙은 파절임에 싸서 소주 한잔. 구린내 잔뜩 풍기는 곱창 집에서 꽉찬 곱 속에 작은 고추 무침 끼워 넣고 부추와 깻잎에 싸서 소주 한잔. 맥주는 조금 안땡기는 것이 술을 마신 뒤 '캬' 하며 내려놓는 맛이 없다. 배만 부르지. 취기도 늦게 오기 때문에 뭔가 야릇한(?) 분위기 자체가 형성되질 않는다. 맥주는 처음 본 동호회 사람들끼리 서로의 캐릭터 파악할 때 정도가 딱 좋은 듯. 내가 자주 방문하는 어떤 블로거는 언제나 술을 혼자 마시는데 그걸 또 인증샷을 찍어 올린다. 혼자 중국집 가서 닭꼬치에 빼갈을 한 병 비우고 돈 10만원을 계산하고 나오는 그는 정말 대인배. 아씨, 근데 나도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발전하게 되면 다리가 아닌 손을 떨게 될 것 같고 조만간 곱창 집에서 곱창 1인분 시켜 놓고 곱창집 이모 인증샷을 올릴 것만 같다. 그리고 깨달은 것, 술배는 정말 존재한다. 술을 연속 4일인가 먹었던 다음날, 벨트를 안매면 흘러 내리던 바지를 입고 출근했는데 자리에 앉아 바지의 단추를 풀며 깨달았다. 젠장, 벨트도 안매고 왔는데 왜 이리 꾹 눌리지. 단추를 풀며 깨달았다. 뱃속에 막혀 있는 위장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 단추를 풀며 깨달았다. 그래서 한 삼주 전부터 축구를 볼 때 마다 꼬박꼬박 사이클을 한 시간씩 타는데 그제 회사에서 축구를 하다가 또 깨달았다. 제길 배도 배지만 사이클 따윈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술이 좀 땡긴다. 퇴근도 일찍 했는데 1박 2일 재방송이나 보면서 뒹굴거리기는 엄마한테 미안하다. 안산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처음엔 호의를 보이더니 '둘이 마셔야지' 라는 말에 급 실망 했는지 연락이 안온다. 엄마를 데리고 나갈순 없잖아 신아. 어째야 할까. 술이 너무 땡기는데-_-;;;
최근에 실업계 고교 최초로 골든벨을 누른 누나가 책을 썼는 모양이더라.
혹시 읽어봤나?
간단한 신문기사를 보니 이 누나가 한 때 암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렸다는데, 그 때 자신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으니 73가지가 나온다더라.
문득 나도 따라서 인생의 목표를 죽 적어봤는데 고작 20개 나오니 끝나더라.
물론 그 중에는 다이어트도 있다.ㅋㅋ
너가 술 야그하니 생각나는게 다이어트인데, 난 목표가 70Kg다.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ㅋㅋ
허구연 성대모사 하는 현대자동차의 HERO 경익형님 ㅋㅋㅋ 끝까지 보면 "니 모하노" 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멋쩍은 듯이 쓰윽 꺼버리는 모습이 귀엽다.
경익이형과 그리 오래 알지는 못했지만(첫 인사를 건냈던 것이 2007년이니!)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경익이 형을 중심으로 밝은 오로라가 펼쳐지게 할 줄 아는, 정말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다.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환상속의 그대를 입으로 반주까지 다해가며 춤까지 추더라)속에서 내가 간간히 뛰었던 행사(응?) 사회의 구할의 모티브는 경익이 형님이었다. 어색하게 따라만 해도 중간 이상이고 내 것으로 조금만 소화 시키면 박수 받는다. 그러니 경익이형의 능력은 정말 대단.
회사에 입사한 뒤에도 만날 티비에 나오더라. 아 멋지고 또 멋지다. 그리고, 내게 언제나 좋은 충고를 아낌없이 해준다. 힘을 주고 용기를 준다. 형님에게 더더 이쁨받아야지. 그래야 훗날 나무그룹 '이사' 로 날 데려간다고 했다! 그날을 함께 꿈꾸며! 행님 사랑합니데이~
어렸을 적 나와 누나가 놀던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기 아까웠는지, 엄마는 테이프 수십개를 틀어 놓고 녹음을 하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토닥거리던 그 곳에는 아빠가 출근을 하시고 난 뒤 셋이 함께 했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토당토 않게 내가 누나에게 "너가 애냐" 라는 말을 던지는 부분도 녹음이 되었고(아마 누군가 사용했던 말을 따라했겠지) 엄마가 장난 친다고 꼴까닥, 하고 죽은 척을 하는 바람에 나와 누나가 안절부절 못하는 소리도(?) 녹음되어 있었다(10분 뒤 나와 누나는 누워있는 엄마를 뒤로 하고 까르르르 하며 놀았다지). 한 번은 퇴근 하는 아빠의 음성이 들리기도 했다. 여느 가족과 마찬가지로 나와 누나는 "아빠~~" 하며 앵기는 듯 했고 먹고 살기 힘든 탓에 하루 종일 피곤했던 아빠는 "에고고 에고고 그만해" 라며 슬쩍 우리를 옆으로 미셨다(소리만 녹음되어 있어 행동은 파악 안되지만 아무튼). 목소리에는 피곤과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어렸을 적 얘기를 들으면, 엄마의 옛날 가계부에 써 있던 한 줄 두 줄의 일기를 읽고 있으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느낄 수가 있다. 하루는 아빠가 부엌으로 몰래 들어가시더니 소리 안나게 쌀독을 열어 보셨단다. 돈은 없는데 쌀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모습을 뒤에서 본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아빠 몰래 구슬을 끼우셨다. 월급을 받는 날이면 일단 애들부터 먹고 봐야 한다며 한 달치 이유식이며 우유, 간식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오셨다. 큰 장난감은 못 사주셨지만 당시 유명했던 영프레모빌(현재의 레고)을 낱개로 사주셨고 밑에 집 친구에게 팽이 싸움에서 지고 온 날, 내 손을 끌고 가 똑같은 팽이를 하나 사주셨다. 고무로 된 팽이였다. 우리 자식에게는 '가난' 을 물려 주지 않겠다던 아빠의 힘은 대단했다. 죽어도 엄마에게 구슬을 끼는 일을 시키지 않으시겠다며, 돈은 내가 벌겠다던 아빠의 자존심은 대단했다. 165cm의 키에 50kg가 살짝 넘는 작은 체구의 아빠는 끊임없이 '돈이 되는 장사' 를 찾으셨고 어렵게 어렵게 1988년, 지금으로 부터 22년 전에 안산으로 내려와 사업을 시작하셨다. 어려웠다. 사업 초기, 컨테이너 박스 하나 차려 놓고 시작했던 사업. 어렸을 적 가끔씩 들렀던 그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는 냄새가 기름내라는 것을 안지는 꽤 나중 일이었다. 기름에 떡이 져 꼬질꼬질한 쇼파에 앉아 뛰어 다녔고 가끔씩 공터에 나가 쓸데없이 철사줄을 펴 굴러 다니던 나무를 묶기도 했다. 아빠 회사에 가면, 할 게 없었다. 비바람이 치던 날, 바람에 날아갈 듯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아빠는 혼자 물건을 나르고 계셨다.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함께 사무실에 계셨던 엄마가 도와주러 나가자 아빠는 소리치셨다. "들어가! 왜 나와 지금 밖에!" 엄마는 안절부절 못하며 컨테이너 안에서 작은 창 너머로 쓰러질듯 말듯 바지런히 움직히는 아빠를 그냥 바라만 보셨다. 당시 나와 누나가 그렸던 아빠의 그림은 검은 작업복이었다. 철이 없던건지 그 그림 밑에 나와 누나는 "매일 작업복만 입고 다니는 아빠, 양복 입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라는 글을 써 넣었고 그 그림은 집 앞에 있는 마트의 행사에 채택(?)되어 코팅이 된 채로 며칠 동안 걸려 있었다. 아빠에게서 나는 냄새가 기름 내라는 것도, 옷에 묻어 있던 얼룩이며 가는 팔목에 핏줄이 터질 정도로 튀어 나와 있던 것도, 그 때는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먹고 살만해 졌다. 대신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적었다. 가끔 주말에 야구 글러브를 끼고 공을 주고 받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나서 그렇게 한 두번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고 귀찮으셨을지, 그 때 알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아빠의 목적은 그거였다. 먹고 살만해 지는 것, 나와 누나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는 것, 고생한 엄마를 호강 시켜 주는 것. 고등학교 1학년, 아빠는 나와 누나를 엄마 몰래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 "사고 싶은거 아무거나 골라" 벙찐 나와 누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서로 어색했을 뿐더러 접근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나는 책 한권을, 누나는 CD를 골랐다. "엄마 몰래 사고 싶은거 다 사주려고 했더니 겨우 이거 고른거야?" 서운함이 비쳤다.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대학을 못나오셨지만 수학 쪽으로는 참 똘똘하셨다. 중학교 때 까지 수학책을 들고 안방으로 가면 큰 꾸지람과 함께 답을 얻어 오곤 했다.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집안 사정도 있었기에 자식들은 하고 싶은 공부 원없이 시켜주겠다던 마음도 있으셨다. 체구가 작다고, 학벌이 좋지 않다고, 돈이 없다고 무시 당했던 아픔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고 너네들만큼은 나와 같은 삶을 살지 말아라, 하는 마음으로 일하셨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와 누나가 행여나 뒤쳐질까 꼬박꼬박 학원을 보내고 '수학이 딸리는 것 같다' 라는 말 한마디에 당시 고액 과외도 시켜 주셨다. 재수를 하겠다고 했더니 하라고 하셨다. 아직 친가 통틀어, 외가 통틀어서도 수도권 지역으로 대학을 간 사람이 없었다. 재수를 하고 고려대학교에서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던 날, 아빠는 엄마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 효도 다했어 이제. 효도 안해도 돼" 수능을 망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누나가 연신 1등을 하며 장학금을 받아 왔을 때도 아빠 특유의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등록금에 해당하는 돈을 누나 통장에 넣어 주셨다. "놀러 갔다와" 이런 아빠지만 못난 아들과의 트러블은 참으로 많았다. 사춘기였던지, 아님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았는지 역시나 자식을 대하는데 서투른 아빠의 대화에 나는 단답형으로 대했고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엄마 아빠가 이해가 가지 않은 적도 많았다. 뭐가 잘났다고 정치 얘기를 하다가 싸운 적도 있었고 내 표정에 기분이 나빴던 아빠는 며칠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대체 내가 뭐가 잘났다고.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왜 나는 그랬었는지, 왜 내가 아빠에게 입을 반쯤 벌린채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었었는지, 지금 알고 있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에 너무도 죄송스럽다. '오늘은 집에 가서 아빠에게 술 한잔 하자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아빠를 대하면 괜한 어색함에 말을 못건낸 적도 많았고 가슴속에 담아뒀던 말을 아빠에게 건내는 상상을 하다가도 혼자 죽인적이 참 많았다. 서로의 접근의 문제겠지만 아들인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맞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작년 부터 아빠 회사에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더니 참으로 다사다난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힘들어 하셨다. "아빠 힘내세요. 아빠를 믿어요" 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었는데 보낸 뒤에 '아차' 했다. 믿는 다는 말보다는 아빠의 어떤 선택도 저는 동의합니다, 라는 말이 더 힘을 드렸을 것 같았다. 몸도 안좋아 지셨다. 오른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고 얼마 전에는 갑자기 맹장이 터져 수술을 받으셨다. 엄마는 싫어하시지만 마루에서 tv를 보다가 잠드신 아빠의 얼굴 곳곳에는 삶의 고단함과 피곤함, 그리고 '늙음'이 깊게 베어 있었다. 쇼파 한 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체구를 갖고 아빠는 우리를 키우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엄마를 다독이셨다. 들어가서 주무세요, 라는 말을 하면서도 아빠 불 끌거에요, 라는 말을 하면서도 꼼짝 않으시는 소진 된 아빠의 체력은 '아빠' 라는 직책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이고 드러 누우셨을 것만 같다. 아무 말 없이 몰래 취직하고 나타난 아들을 아빠는 또 좋아하셨다. 졸업하기도 전인 3학년 때 '장학생' 이라는 이름으로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 했으니 집안의 경사였다. 내심 나도 이제 아빠가 조금 쉬셔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내게 들어가는 부담을 줄이면 아빠가 조금 편하게 일하실 수 있겠지 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 29먹고 또 다시 아빠 속을 썩이게 되었다. 그래도 아빠는 이해해 주셨다. 그래, 아빠가 다 서포트 해 줄게, 하고 싶은 일 해봐, 열심히 해 보고. 그렇게 속을 뒤집어 까 놓은 아들이었는데도, 이제는 조금 쉬실 때도 됐는데도 29 뒷바라지를 하시겠다고 했다. 죄송스러웠다.
집에 아무도 없다. 아빠는 병원에 계시고 엄마는 그 옆에 계신다. 오른 쪽 팔이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아 드디어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데 간단한 수술인 줄 알았건만, 전신 마취에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수술이란다. 그럼에도 이 쪽팔린 아들은 아빠에게 직접 전화를 해 "몸 잘 살피세요" 라는 말은 못하고 엄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잘 되라고 기도하자' 라는 엄마의 문자를 받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도 어색함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았다. 못난 아들이다.
부디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수술이 잘 끝나고 베시시한 얼굴로 병실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아빠가 퇴원하고 몸을 추스리시고 나면, 이 못난 아들도 용기 내어 아빠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아빠, 저 술 한잔 사주세요. 곱창, 좋아하는데.
아버지 멋있당!
저도 진짜 장난아니게 무뚝뚝한데 요즘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있거든요
근데 정말 작은 문자하나에도 크게 감동받으시더라구요
왜 진작 이렇게 하지않았나 하는생각이 많이들어요
사랑은 표현이래요 표현 많이많이 하면서 살아요 오빠^^
아버지 금방 쾌차하실거에요 화이팅~~~!!
금속의 열처리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퀜칭(담금질)이나 어닐링 등 조직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고 플라즈마와 같은 열원을 이용하여 금속 표면을 경화 시키는 열처리 방법도 존재한다.
요즘 많이 쓰이는 알루미늄 합금은 알루미늄이 갖고 있는 가벼운 성질 덕분에 자동차는 물론 일상 생활의 많은 곳에서 경량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연한 성질로 인해 열처리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보다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알루미늄 합금의 열처리 메커니즘은 용체화와 시효처리라는 단계를 거쳐 이루어 진다. 500℃ 전후의 온도에서 4~6hr 동안 노출시키는 용체화 처리 단계는 알루미늄 합금 내에 존재하는 합금 원소를 알루미늄 모재에 고르게 분산 시키는 작용을 한다. 영어로 solid solution 이라고 하는데 내부 용해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 하다. 용체화 처리 뒤 그 상태로 내부를 유지하기 위해 급속 냉각, 즉 퀜칭을 시킨다. 일반적으로 수냉을 많이 사용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기름에 담그는 유냉, 혹은 상온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자연 냉각을 할 때도 있다.
합금 속에서 사이좋게 고르게 퍼진 알루미늄 모재와 합금 원소들은 시효처리를 통해 경도 및 강도가 향상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 170~210℃ 정도의 온도에서 4~8시간 정도 노출을 시키게 되면 알루미늄 모재 속에 녹아 있던 합금 원소들이 석출 되면서 미세 석출상을 형성하게 된다. 덩어리 속에 또 다른 작은 덩어리들이 생긴다고 보면 되는데 내부에 생긴 이 작은 덩어리들이 경도 및 강도 향상에 큰 역할을 한다.
전위(dislocation)라는 전문 용어(응?)를 쓰지 않고 간단히 풀어 쓰면 큰 덩어리 속에 생긴 무수히 많은 작은 덩어리들이 외부에서 힘이 가해졌을 때 덩어리에게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게 되고 이는 결국 경도, 강도 향상의 원인이 된다. 순수한 알루미늄은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기가 어렵지만 여러 합금을 섞은 뒤 적당한 크기로 성장시키면 물성이 뛰어난 재료로 탈바꿈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석출경화라고 한다.
비단 이런 재료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순수 알루미늄이 약하듯이 획일화 된 사회는 약하다. 그것이 사상이 되었던, 생각이 되었건 간에 일방적인 '길' 을 주입하며 다른 생각을 '틀렸다' 고 생각하는 사회는 결코 성장할 수가 없다. 서로 다른 덩어리들이 모여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 했을 때 보다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넷북을 하나 구매했다. 사양, 디자인, 뭐 이런거 신경 안쓰고 회사 쇼핑몰 들어가서 판매량이 가장 높은 것 중에서 가격을 비교했는데 솔직히, 신민아 때문에 샀다.
어떻게 이걸 보고 안살수가 있어?
은지 누님이 hp 이쁜 넷북이 있는 걸 몰랐다. 팔라고 했더니 싫단다. 주중에는 빌려줄테니 주말에는 달란다. 왠지 또 전투의 기운이 몰아치는 것 같아서 그냥 질렀다. 10개월 무이자 + 직원 할인, 분명 자동차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넷북도 싸게 살 수 있다니 참 좋다. 신민아 처럼 이쁘게, 어디 한 번 사용해 봅시다.
링게르(링거?)를 맞고 왔다. 4일 연속 술을 마셨더니(금요일 대략 소주 2병-_-, 토욜 소주 2/3병+맥주, 일요일 소주 2병, 월요일 소주 2병 + 알파) 몸이 화가 났는지 주인인 내가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잘 못받아 들였다. 아침엔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교육을 받기 위해 앉아 있는데 속에서 난리가 났다. 내보내 달라는 것이냐? 그런게 아니에요! 그럼 뭐냐? 일단 먹기만 해봐요 뭐든! '위'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다(응?) 결국 사내 부속 병원을 찾았다. 오늘도 술 드실 겁니까? 아니요, 죽을 것 같습니다. 링게르 맞고 가세요, 그리고 술을 자제하시구요, 덩치는 산만해서 약하시네. 덩치 산만한 거랑 주량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힌 논문이라도 읽으셨나보죠? 라고 대꾸하려다 말 할 기운도 사라졌는지 눈을 반쯤 뜬 채 '그저 멍하니 의사만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는 나보다 두배나 더 큰 의사 선생님이 한 보따리의 약을 지어주며 쉬다 가란다. 간호사 누님에게 몇 시간이나 걸리냐 했더니 2시간 반이 걸린단다. 처음 와보셨어요? 라는 물음에 네, 라고 답했더니 큰일났네 이제, 하신다. 한 번 이 맛을 느낀 꽤 많은 직원 분들이 자주 찾기 때문이란다.
눈을 떴다. 12시 50분이 되어 이제 나가란다. 나가는데 아새끼들이 들이 닥쳐 링게르가 꽂힌 팔뚝에서 피가 솟구쳤다. 다시 눈을 떴다. 누군가 영어 단어를 외우라며 책을 건냈다. 큰 소리로 따라 했더니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날 보며 웃기 시작했다. 영어를 노래와 함께 불러야 발음도 좋아진다며 꾸웨웨엑, 돼지 멱따는 듯한 노래를 따라하라길래 또 따라했다. 다시 눈을 떴다. 어린 애들이 귀찮게 계속 옆에서 알짱 거린다. 링게르 줄을 건드리기도 하고 만지작 거려서 저기요! 여기 좀 봐주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려 하는데 목소리가 안나온다. 애들은 계속 뛰어 다니며 내 줄을 건드리고 또 피가 솟구쳤다. 다시 눈을 떴다. 팀 선배들이다. 옷 챙겨 입고 나가잖다. 약을 주머니 속에 넣고 나갔더니 야구를 하러 가자길래 몰래 회사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 유니폼을 챙겨 입고 야구를 하려는데 링게르를 꽂았던 곳이 아프다. 공을 몇 번 주고 받았다. 다시 눈을 떴다....
기억나는게 이쯤이고 이 외에도 에피소드가 한 5개는 더 있었던 듯 하다. 동굴 속을 탐험하다가 눈을 뜨기도 했고(물론 그 눈을 뜬 상황 역시 꿈이다) 병원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다시 눈을 뜨기도 했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음악을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굴까, 그게 아니라면 사람에게는 당췌 흥얼흥얼 음악을 찾는 본능(응?)이 있을까 궁금해 졌다. 열심히 검색을 하며 찾을 위인은 아니기에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우리가 모르는 뇌 속에는 신바람을 찾는 어떤 루트가 각인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며 생각을 접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 그런데 누군가 흥얼 거리는 걸 보고서 따라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혼란스러워 졌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뭐 어쨋든.
"오빠 웃음 뒤에 그늘이 져 있어" "너 올 해 들어서 가족들 앞에서 앞에서 웃은 적 있어?" "너가 제일 힘들어 보이는데?"
요 근래 만난 친구들과 가족들한테 들은 이야기. 신나는 일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고 인생 걱정, 짜증에 짜증만 더하다 보니 될 일도 더 안되는 듯 하다. 인생의 아홉수를 참 지랄맞고 거창하게 보내는 듯 한데 행여 나 스스로를 우울함 속으로 가둬 두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필요 없잖아.
억지로라도 더 떠들고 웃고 말도 안되는 개그치며 조금 밝게 인상을 바꿔봐야겠다. 가뜩이나 험상 궂은 얼굴에 플러스 알파를 끼고 다니니 뭐. 머리는 너무 아프고 한숨은 미친듯이 늘고 기력이 바닥을 기는 것이 이대로 가다간 뭔 일이 나도 크게 터질 것 같다. 2주 전이었던가? 쪽팔리게도 1박 2일의 MC 몽을 보다가 재밌어서 우는게 아니라 슬퍼서 눈물이 나왔다. 예능이 쉬운것은 아니겠지만 참 고생한다 몽이형. 나야 뭐,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겄나.
기운을 내보자. 억지로라도 흥얼 거리고 눈 좀 크게 뜨고(크게 떠지지 않지만) 어깨를 피자. 이대로 죽을 원씨가 아니잖아. 두 주먹 불끈 쥐고.
1박2일 보고 덧. 김C 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나와 그를 비교하는 건 일단 말이 안되지만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한 달, 남은건가?
오빠 음악은 기보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떠한 소리까지 음악으로 인정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대요. 원시인들이 목소리나 악기로 의사 소통을 하려는 시도, 새나 동물의 소리를 모방하는 과정, 또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했다는 설이 가장 지배적이구요 그러다가 신에게 드리는 종교의식이나 축제를 위하여 진보된 음악이 필요해지면서 점차 발전했다고 배운 기억이..ㅎㅎㅎ 뭐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연구중이라는거..ㅎㅎ
암튼 오빠 궁금하실까봐 살짝 달아놓고가요~~
그리고 아홉수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일들은 액땜이라고 생각하시고!!!
이제 좋은일만 있을거에용 제 기운을 불어넣어드릴께요 ㅎㅎㅎㅎㅎ
유쾌한 오빠가 좋다구요 ㅎㅎ 힘냅시다~~~~~~~~~~~~!
기보법이 뭐야.... 악보 말하는 건가?ㅋㅋ
역시 사람은 배우고 봐야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설이 가장 유력하구나. 자연스럽게 발생이라... 왠지 능구렁이 담넘어 가는 듯한 기분이 ㅋㅋㅋㅋ
더 공부하라고 좀 전해줘...
아 올해는 정말, 우울함의 연속이다 ㅋㅋㅋ네 기운좀 많이 주라. 조만간 엄청난 힘이 필요해 질듯-_-;;;
유쾌하게! 서로 힘내자구^^ 화이팅!!! (한 번 봐야 하는데 말이지 ㅋㅋㅋㅋ)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에 실업계 고교 최초로 골든벨을 누른 누나가 책을 썼는 모양이더라.
혹시 읽어봤나?
간단한 신문기사를 보니 이 누나가 한 때 암선고받고 죽음을 기다렸다는데, 그 때 자신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으니 73가지가 나온다더라.
문득 나도 따라서 인생의 목표를 죽 적어봤는데 고작 20개 나오니 끝나더라.
물론 그 중에는 다이어트도 있다.ㅋㅋ
너가 술 야그하니 생각나는게 다이어트인데, 난 목표가 70Kg다.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다.ㅋㅋ
술이 땡기면 차를 마시거나 정신수양해보게나.ㅋㅋ
힘내라.~~
나도 다이어트 할라구 ㅋㅋㅋ
정말 제대로-_-;; 술도 좀 끊고ㅋㅋ
나도 한 72키로 정도만 만들어야지;;
아 이놈의 술이 웬수!
술은 좋은 친구..
라고 생각하면 똥으로 잘 빠질거고...
웬수라고 생각하면 술은 내 뱃속으로 남아
살로 영원히 안식할거야
술은 정말 베스트 프렌드!!! 다 빠져나가라 똥아!!!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ㅋㅋ 숙주, 오랜만이군!
업데이트는 슬슬 하고 있어 ㅎㅎ
싱가폴에 있구나. 눈치 인생, 한국이나 싱가폴이나 마찬가지네;;
건강 유의하고,, 내년에나 들어오는거지?
그리고 결혼... 어려운 문제구나ㅋㅋㅋ
역시나 나역시 이런저런 고민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해 가고 있다...
사는게 절대 쉬운게 아니구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