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한 주

원씨 2008년 08월 01일 21시 05분
#월요일 - 해병대 교육 첫날이었다. 질질 캐리어를 끌고 연병장(?)앞에 쭈욱 서 있으니 갑자기 핸드폰을 걷으란다. 담배도 다 내란다. 갑자기 열차 열차가 반복되고 앉어, 일어서를 외쳐대는 교관 앞에서 '이게 뭔가' 라는 끊임없는 의문을 품으며 결국 하라는대로 다했다. 몸이 덜 풀렸는지 간만에 입어본 군복을 받아 입고 열심히 뛰다가 앞에 있던 사람의 팔꿈치에 안면을 정면으로 강타 당했고 결국 코에서는 시뻘건 코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살면서 코 파다가 흥건하게 코피를 흘린적은 있었지만 한번도 누군가에게 맞아서 코피를 흘린적이 없었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교관을 찾아가니 머리에 물을 뿌리고 휴지를 건낸다. 끝인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이건 병원 가봐야 해. 많이 부었어' 라는 말에 쫄아 다시 교관을 찾았고 해병대 199기라고 밝히신 분의 차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세상에. 코뼈에 금이 갔단다. 의사선생님 왈, '밴드나 보호대라도 주고 싶은데 여기는 그게 없네요. 교관님, 이분 모든 훈련 열외시키세요. 안정해야되요' 이건 뭐 나이스를 외쳐야 하는 상황인지 부어서 윤곽이 없어진 코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건지 원. 뭐 그래도 레펠도 했고 IBS 훈련도 다 해버렸으니, 어찌 바다에 가서 물속에 몸을 안담그고 오리오.

#화요일 - 조심하라는 동기들의 말을 흘려 들으며 보트에 올랐다. 빙구같이, 물의 깊이를 재어보겠다고 패들을 물속에 넣었다가 손을 놓는 과정에서 부력을 못이기고 튕겨 올라온 패들에 또 다시 코를 강타당했고 잔잔히 빨갛게 퍼져나가는 눈망울에서는 훌쩍 눈물이. 허나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댐핑인지 뭐시깽이인지, 여튼 보트위에 올라가 줄을 잡고 뒤집는 훈련이었는데 동기들의 박수 소리를 받으며 멋지게 뒤집고 난 뒤 보트 밑에 깔린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무리 물 밖으로 나가려고 기를 써 보아도 누군가 계속 몸을 당겨댔고 또 다시 당황했던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차근차근, 보트 바닥을 손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며 물 밖을 찾았다. 밝은 빛이 보이고, 어렵게 고개를 물 밖으로 내미려는데 올라가질 않는다. 줄이 목에 걸려 나를 당기고 있었던 것. 있는 힘껏 물장구를 치며 고개를 내밀고는 외쳐댔다. '줄이 목에 걸렸어요!' 그런데 왜, 그 순간 웃음이 나왔을까. 실실 쪼개며 정말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나를 형님 한 분이 발견했고 곧바로 교관에게 전달, 줄을 잡아 당기고 다시 물 속으로 잠수해 그 상황을 빠져 나왔다. 물속에서 발버둥쳤던 흔적은 내 목에 커다란 밧줄 자국과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위험했던 상황. 아, 28살 까지 물가를 조심하라 했던 아버지의 말씀이 머리를 스친다.

#수요일 - 어찌저찌 해병대 교육을 마치고 파주 연수원으로 돌아왔다. 알배긴 허벅지 덕에 뒤뚱뒤뚱 걸음걸이에 코는 부어있고 목에는 깊은 상처를 남긴 멋드러진 해병대 교육 뒤에는 팀배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니미. 나보고 울산을 가라고? 생산개발은 무조건 울산이라고? 100% 울산으로 가면 된다고 알고 있으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나를 포함, 다른 회사를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한 동기들은(연구장학생 3명) 입사를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입사 전 우리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에 그간 받았던 장학금도 돌려줄 수 없다고 외쳤다. 심지어 관련 부서 차장님과 대리님까지 만나 술과 밥을 함께 하며 '너희들은 우리팀이다' 라는 말까지 들었건만 얼굴이 하얀 인사담당자는 '우린 들은적이 없다' 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스코를 포기하고 입사한 이곳, 이유는 지역이었건만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동기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대학원을 가야 하나, 그렇다면 어떤 분야로 갈까. 아참, 그리고 점심먹고 했던 아이스크림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아이스크림을 쐈다.

#목요일 -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결국 서로의 눈높이를 마추지 못했고 너무도 다른 차이를 인정하며 결국 한 사람과의 인연을 끊고 말았다. 옳은 결정이었을지, 아니면 후회할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번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연락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서로에 대해 많이 몰랐던 것이,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한것이 문제이겠지만 간극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일테다. 그게, 어쩌면 서로에게 더욱 편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금요일 - 오늘이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빈폴티를 연수원 방에 놓고 온줄 알았는데 다시 뛰어가보니 방 앞에 있는 쇼파에 놓여 있었다. 이런 병신, 어제 밤 전화를 하며 덥다고 벗어 놓고는 18시간이 지나서야 찾았다니. 첫월급을 어머니께 드리려고 현금 카드를 긁는데 등록되지 않았단다. 분명 병원비로 한 번 쭈욱, 긁었던 기억이 있는데도. 결국 더운 날씨에 여러곳을 돌았건만 돈을 찾을 수 없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어머니께 멋지게 보이려 했건만 이것도 실패. 교육 중 팀별 게임에서 4등을 했다. 지금까지 계속 1등, 2등을 도맡아 했었는데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시작하자마자 깨달았으니, 조원들 모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아직 이번주 한 주는 끝나지 않았다. 비록 엔지비 부장님께 "너희는 남양이다. 걱정마라" 라는 이야기를 듣고 수요일 있었던 안좋은 기억은 많이 희석된 상태다. 월화, 있었던 해병대 교육 역시, 불평 불만에 가득, 감사함을 언제나 잊지 말자던 나름의 개똥철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기에 잃은 것 보다야 얻은 것이 많았다고 느낀다. 허나, 아직 이번주는 끝나지 않았다. 동기들의 '이번주 너가 최고야' 라는 말을 들으며 '더욱 조심해라' 라는 조언을 곱게 곱게 귀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길었다. 너무도 긴 일주일이었다. 이제, 액땜은 다 한거겠지? 다시금, 정상적이고 안정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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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박 2008년 08월 03일 02시 17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파란만장한 한주였구나;;

    • 원씨 2008년 08월 11일 00시 38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액땜이라고 생각을.. 지난주도 그닥 좋지는 않았어 ㅋㅋ

  2. hyunss 2008년 08월 04일 14시 51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

    너 살아있니........................................

    두번쯤 죽었을꺼 같은데 왠지;;

  3. 꽃등심 2008년 08월 08일 01시 2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빠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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