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요

딴지 2007/07/03 21:31

 현대자동차 연구 장학생 합격 소식을 듣고 말 하지 않아도 먼저 와서 축하해 준 많은 이들과 내가 말을 건냈을 때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주거나 서로 마주보며 들뜬 목소리로 축하해 준 친구들과 후배들, 그리고 선배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구장학생이란 무엇인지, 현대차의 입지나 레벨 정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가늠해 보는, 한 마디로 "나 지금 조낸 배아프다. 너가 뭔데 거길 붙어?" 라는 식의 말도 들었다. 일례로,

"그거 사람들이 몰라서 못쓰는 거잖아요. 경쟁률이 낮다면서요"
"나는 뭐, 현대자동차는 원래 생각도 안하고 있던거라..."
"원씨는 성적이나 뭐 그런것 때문이 아니라 많은 활동을 해서 붙은거잖아요...."

 정말 유치한 발상이지만, 만약 현대자동차 연구장학생에 붙은 뒤에 이런 말을 하면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 있는지도 모른채 단순히 끌어 내리려 하는 여러 사람들의 말투에 '인생을 헛살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첫 번째 말에 대한 답을, 나 역시 유치하게 이어가겠다. 이번 경쟁률은 6:1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 경쟁률이 별거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할 말 없다. 모두 다 쟁쟁한 친구들이었고 나로 인해 떨어진 친구들이 나보다 못났기에 떨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두 번째 말에 대한 답은, "너는 현대자동차에 관심이 있니?" 라고 물었을 때 나와야 하는 답이다. '원씨가 현차 붙었대' 라는 말에 나올만한 대답은 분명 아니다. 한 마디 더 하면, 일단 붙은 다음에 포기 각서를 쓰던가 해라.
 세 번째 말을 한 사람은, 앞으로 면접 걱정 없을 듯 하다. 내가 만났던 면접관 한 분은 합격의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자기는 "솔직함과 당당함을 봤다" 고 답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내 앞에 앉아 있던 다섯명의 면접관마다 틀릴 것이 뻔한데 대체 누가 원씨의 합격 사유가 '수많은 경험' 때문이라고 말했을까. 심지어 나는 자기 소개서에도 내가 했던 많은 활동들을 다 쓰지 않았다. 자격증 역시 두 개 만 쓰게 되어 있어서 남은 여러개의 자격증은 쓰지도 못했다. 이 말을 한 이는 원씨의 학점과 토익 점수가 낮다고 생각을 했는데 붙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른게 있을 것이고 때문에 자신은 나보다 학점과 영어 성적이 좋을게 뻔하니 붙는 것은 쉬운 일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새다. 때문에 원씨가 밖에서 활동하는 동안 나는 과도관에서 공부를 했다, 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대외 활동을 한 것과 학점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내가 과도관에 쳐박혀 있는다고 해서 학점을 잘 받을 자신이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단순히 대외활동을 했다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은 수많은 것들이 내게는 더욱 소중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강연과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학교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발표와 사회등을 경험했으며 그 와중에서 많은 것을 읽고 생각하고 익혀나갔다. "나도 학업에 덜 신경쓰고 대외 활동 많이 하면 그건 쉬운 일이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씁쓸히 웃으며 "잘나셨네요 참" 이라는 말을 되돌려 주고 싶다.

 아. 내가 왜 이리 유치해 졌을까. 무엇보다, 친하게 생각했던 이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때는 내 자신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기분에 씁쓸한 표정을 지울수가 없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붙었을 뿐, 내 년, 내 후년이 되면 지금 내게 그런 말을 건낸 이들도 모두 번듯한 기업에 입사해 나의 축하를 기다릴지 모른다. 난 그 때가 되면 진정 축하를 해 주겠지만, 혹, 그들은 모르겠다. '거봐, 나도 너처럼 이렇게 합격할 수 있다니까. 별거 아니잖아' 라는 생각을 할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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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세번째 - 혼자 피어나기

    Tracked from Disturbed Angel _ Sung YuJin 2007/07/07 00:2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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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복 2007/07/04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만'이라는 것,,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나는 자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남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나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 결국은 자만심이 된다더라...
    그래서 타인을 볼 때, 나의 잣대에 함부로 끼워맞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도, 나도, 대부분의 우리 나이 또래들 역시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중요한 걸 배워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알게 모르게 잘못하고, 남들에게 상처주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면서 노력한다는게 중요한 거 아닐까, 어쨋든 인간은 완벽해지기 어렵고 그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거니깐~
    너의 날카로운 고민들을 읽어보면서 나도 한번씩 좋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ㅋ

  2. 성유진 2007/07/06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요~^^;
    저도 유치하고, 누구든 유치한 생각을 할꺼에요~
    사람들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피하며 생활하다 보면 그런 자신에 또 상처받게 되더라구요.
    흔히들, 뭐만 있으면 된다~ 하고 말해도 뭐~ 이상이 있어도 안되더라구요.
    주변에 직장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을 볼때면 자신을 보면서 힘들 얻기 보다는 밖을 보며 지쳐하는 경우가 많아요~~
    직장이란게 너무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어서 일꺼라고 생각 합니다.

    • 원씨 2007/07/10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제 친구들, 제 주변인들에게 상처를 받기 싫은데, 그게 참 잘 안되네요. 괜시리 까칠한 제 성격에 문제도 있는 것 같구요;; 에휴;;

  3. 비밀방문자 2007/07/07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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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AKI 2007/07/09 0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뒤늦게 축하합니다 ^^
    그런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좀 아쉽긴 하네요.
    그러고 보니 동기 중에 현대자동차 붙은 녀석이 있는데...

  5. 김민섭 2007/07/20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한 친구중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ㅅ ㅏ람이 있으면 정말 싫어지죠... 왜 내가 얘랑 친하게 지냈지. 이런게 심사가 뒤틀린 애였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이토록 경쟁의식을 느끼면서 어떻게 친구로 지냈나 하는 의문도 들기도 하고.. ㅎ 그럴떄 정말 살맛안나더라고요.. 짜증도 많이 나고..

    • 원씨 2007/07/20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경쟁의식.. 물론 친구 사이에 경쟁도 필요하겠지만 초등학교때 배웠던 "선의의 경쟁" "참다운 경쟁" 뭐 이런 걸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이럴때 친구들이 참 무섭더라구요.. 나는 정말 이 친구가 잘됐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배신감도 느끼구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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