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개론

원씨 2012년 05월 18일 17시 49분

  주인공이 납득이의 품에 안겨 엉엉거리며 눈물을 흘릴 때 같이 눈물을 흘렸다. 씨봘,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라며. 첫사랑이 떠올라서라기보다는 2002년 흑석동 파전집에서 쪽팔려하는 친구들을 옆에 두고 맥주잔을 들고 존나게 눈물을 흘렸던 처량한 스스로가 떠올라서.

  건축학 개론을 보고 나오면 연인들끼리는 싸운단다. 너 첫사랑은 언제였어? 누구였는데? 어땠어? 만약 한 쪽이 꼬임에 빠져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놓으며 감상에 젖으면 그날은 볼 장 다 본 날이란다. 특히 상대를 앞에 두고 앉아 고개를 약간 든 상태에서 가늘게 눈을 뜨고 눈동자는 약 15도 밑으로 떨어트리면서 그윽한 표정을 짓는다면 납득이를 찾아가야 될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고 끝을 맺은지 나도 10년이 된 것 같다. 상처를 받고 아픔을 주기도 하고. 싸우고 매달리고 울고 붙잡고. 건축학 개론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고 납득이가 돼서 훈수랍시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 적도 있다. 이제는 30 대 중반의 중후한 나이를 향해 가는 순간에, 첫사랑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순수한 사랑의 아련한 추억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밀고 당기며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 뿐. 정답은 물론 없겠지만.

  첫사랑이 아련하고, 깨끗해 보이는 것은 오직 상대만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순수함 때문이다. , 첫사랑이 이렇게 남으려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로 좋아하면 안 된다. 영화처럼 10, 20년 뒤 서로를 좋아했었다, 이렇게 뭔가 남기면 안 된다. 그냥 한 쪽만 존나게 좋아하다가 열라 비참하게 채여야 한다. 그게 맞다고 본다.

  암튼, 애인이 없는 나는 건축학 개론을 보고 마음껏 첫사랑을 생각하고 돌이켜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수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 그렇게 하라면 할 수 있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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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상

일상 2012년 04월 20일 21시 01분

#1. 급하게 달려간 병원.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할아버지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간단한 말씀도 할 수 있었고 손바닥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꽉 쥐곤 했었는데 이제 산소 호흡기 없이는 삶을 연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숨 쉬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마치 마라톤을 달리다 마의 고개라는 38km부근을 지나는 듯, 온 몸의 힘을 숨 쉬는데 쓰고 계신 것 같았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뒤, 할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셨다. ‘일요일에 한 번 더 찾아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금요일 밤, 부리나케 안산으로 내려갔다.

#2.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 3년 전 작은 이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흘렸던 눈물과는 달랐다. 부모를 위한 눈물이었다. 다른 친척들과의 눈물과도 달랐다. 아버지의 눈물이 ‘진짜’ 눈물이었고 진짜 ‘슬픔’이었다. 받은 것도 없었고, 바란 것도 없었다. 그저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사랑했고, 모셨다. 입관 전, 할아버지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질 때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 크게 흐느끼지도, 엉엉 울지도 않았지만 슬픔을 오롯이 간직한, 그런 눈물이었다.

#3. 몸이 또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코피가 주룩, 하고 흘러내린다. 금요일과 토요일, 할아버지 장례식으로 밤을 새고 일요일 발인. 강원도까지 달려갔다 온 뒤 뻗었다. 그리고 마감이 시작하는 월요일. 새로운 곳에서 ‘합격’이란 연락을 받았고 지금 직장에 이야기를 했다. 밤새 술자리가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목소리가 안 나왔다. 목감기가 제대로 걸렸다. 약을 사 먹고 약간 차도가 있던 저녁. “경복궁역으로 와” 선배가 불렀다. 다른 언론사 선배들과 이어진 술자리. 결국 술에 취한 선배를 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오니 새벽 4시-_- 다음날 회사에서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주룩, 앉아 있는데 코피가 주룩. 새로운 곳의 입사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는데 고혈압 진단-_- 니기미. 최저혈압은 정상인데, 왜 최고혈압은 고혈압이 나오는거냐-_- 재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몸이 붕 뜬다. 눈은 충혈 됐고 얼굴을 빨갛다. 팀원들의 배려로 주말은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쓴 마지막 원고가 아직도 안 나왔다. 내일도 출근 확정.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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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덕현 2012년 04월 23일 23시 3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아버지 일은 참 안 됐구나... 난 할아버지 얼굴도 못 봐서 어떤 감정인지 조차도 못 느꼈지만, 그래도 소중한 가족을 잃는 것만큼 큰 슬픔은 없지... 인간이란 결국 왔다가 가는 나그네 인생이며,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근데, 원씨 D 일보 기자에서 딴데로 옮기냐???ㅎㅎ 축하해야 하나, 아님 거시기 한거냐???ㅎㅎ 그라고, 건강 잘 챙기셔~ 진짜 건강한 게 복이고, 정말 사회생활 잘 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ㅎㅎㅎ 정말 회사에 20~30년 장기 근무하시는 분들 보면, 한심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긴 시간동안 아무 탈 없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건강히 살고 있는 것만큼 성공한 삶은 없다고 본다.ㅎㅎㅎ

    • 원씨 2012년 05월 18일 17시 50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회사에서 짤리지 않고서야 거시기한 이직이 있을 수 있겄나 ㅋㅋ
      그냥 일간지 경험 해보고 싶기도 하고. 암튼 이래저래 많은 걸 고려해서 옮겼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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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병원

일상 2012년 03월 26일 19시 35분

결국 참지 못하고 병원을 갔다.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째. 지난 번 병원을 찾은 것은 잦은 음주와 야근-_-으로 인해 기력이 저하;; 됐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엔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한 달이 훌쩍 지나서 집에 왔는데 결국 일요일 오후부터 24시간 동안 밥 한 끼 못 먹고 누워서 골골거렸다. 물만 먹어도 바로 화장실로 직행, 물이 그대로 엉덩이로-_-나왔다.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쌓인 지방이 내장을 눌러서 그런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과는 장염과 위염 더블 어택-_- 니미럴.

주사를 맞고 링게르를 맞았다. 궁금한 마음에 진통제도 있나요?, 제가 밥을 24시간 동안 못 먹었는데 여기에는 지금 포도당이 있나요? 비타민도요?” 하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바로 옆에 누워있던 아줌마도 덩달아 물어본다. “제 것 에는 뭐가 들었어요? 난 간이 좀 안 좋은데…” 그러자 건너편에 있던 젊은 여성도 덩달아 저는 뭐에요? 전 밥 다 먹었는데…” 난감해하는 간호사. 환자들도 궁금한 게 참 많았나 보다. 한 번 물꼬가 트이니 계속해서 묻네.

결국 한 달 만에 집에 왔지만 엄마가 만들어 놓은 떡과 고기 반찬은 입에도 못 대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내일 회사 출근인데 기력이 없어-_-일이 하기 싫어 기획회의 아이템은 찾지도 못한 채, 이거 쓰고 누워서 또 자야겠다.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를 가야지.

꿈을 꿨다. 너무 생생한 꿈이다. 내가 어떤 여자를 구출해야만 했다. 그 여자는 감옥에 있었고, 그녀를 구출하는 방법은 감옥에 불을 내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빼내는 것뿐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냈다.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고 감옥 안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뛰쳐나왔다. 젠장, 걸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쳤고 그녀는 다시 감옥 속으로 들어갔다. 건물을 뛰어 다니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도망 다니던 중 그녀의 동생이 찾아와서 내게 화를 냈다. “오빠, 오빠 때문에 우리 언니가 앞으로 2년을 넘게 더 살아야 되요. 어떻게 할거에요? ? 그냥 가만 냅두지, 왜 그랬냐구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리고 들려온 소리는 내가 낸 불 때문에 여러 사람이 다쳤을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죄책감을 못 이기고 경찰을 불러 자수를 하겠다고 했다. 근데 왜이리 주변에 사람이 많은지,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자수를 했고 버스를 타던 중 경찰(팀 선배-_-)이 들어와 수갑을 채웠다. 그런데 한 쪽을 느슨하게 채운거다. 도망가라는 얘기인가? 하지만 나는 스스로 수갑을 단단히 채우고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물었다. “다친 사람, 죽은 사람이 있나요?” “아니 없어, 다행이다. 이 와중에 죄책감을 줄이고 감옥으로 따라가는데 경찰관(팀 선배-_-)이 말한다. “그런데, 너 때문에 너가 구하려던 그 여자는 형량이 두 배로 늘었다는 것만 알아둬라따라가면서 하늘을 봤다. 참 맑았다. , 어제는 광양에 가서 회와 술을 많이 먹었는데, 사람 인생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는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물을 흘렸다. “, 나 다시 돌아가면 안 되요? 제발…” 한참 눈물을 흘리며 감옥으로 보이는 건물을 따라 들어가다가 눈을 떴다. 꿈이었다. 너무 생생했다. 다시 배에 통증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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