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출근

직장 2008/08/21 23:55
 가을임이 확연해지는 선선함에 언제 여름이 다 갔는지 곰곰히 생각할 때 쯔음 아직도 내 몸은 꽉 쪼인 넥타이에 후끈거리고 있었다. 첫출근. 교육 일정이 모두 뒤틀리면서 3일만에 울산에서 안산으로 컴백했고 두근두근 설레였던 첫출근은 깊은 심호흡과 잔잔함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그렇게 나와 대면했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생산기술선행개발팀. '학생' 이라는 신분과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왔던 지난 27년이라면 아침 10시, 남양연구소의 검문소를 지나 임시 출입증을 받았던 그 순간부터 원씨는 독립된 성인(물론 머리는 성인이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나의 미래를 설계할 곳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많은 선배님들을 지나 회의실에 도착, 출퇴근 버스와 연구소 내 식당 및 생활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받고 차장님과 짤막한 대화를 나눈뒤 부장님이 오실 때 까지 대기. 결국 점심을 먹고 부장님과의 두시간의 면담을 끝으로 부서로 이동했다.
 부서로 이동한 뒤에도 팀 부장님과 마주 앉아 인사를 하고 차를 한 잔 마시고 팀장님(?)께 인사드린 후 음료수 한 잔 더 마시고 옆 부서 부장님과도 어색하게 마주 앉아 한 잔의 커피를 마셨다. 경직된 자세에 부장님께서는 "여기 군대 아니야. 편히 앉아" 하시는데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나. 곧은 자세로 허리를 피고 앉아 앞에 있는 커피에는 손도 못댄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이어갔다. 많은 것들이 우선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신기술, 특허라는 부분에서는 '학부 출신인 내가..' 라는 생각에 겁부터 났고 프로그래밍과 고분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학창시절에 전공 공부 좀 열심히 할걸' 하는 아쉬움이, "왜 이때 왔냐" 라는 한숨속의 선배 사원의 말은 뜨끔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신입사원'으로서의 열정과 패기는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자부한다. 뱃속은 뒤틀리고 화장실 가고 싶어 죽겠는 바로 그 순간에도 얼굴에는 진지한 표정을 겸비하고 손에는 펜을 들어 부장님의 말씀을 열심히 필기했고 순간순간 고개도 끄덕였으며 옆 부서 부장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엉거주춤 일어섰을 때 부장님의 "야 왜 커피 안마셔?" 라는 말에 동기 친구와 함께 그 뜨거운 커피를 두 모금에 들이켜 버렸으며(부장님왈, 얘는 커피를 냉수 마시듯 마시네) 팀장님(?)과의 면담이 끝난 뒤에도 "음료수 왜 안마시냐" 라는 말에 소주 원샷하듯 거침없이 고개를 뒤로 제꼈다. 어깨에는 언제나 힘을 주어 빳빳함을 유지했으며 시선처리가 어렵기에 앞만 보고 걸어 다녔다. 수천명의 직원 중 양복에 넥타이까지 차려입은 우리 셋은 누가봐도 '저 신입사원입니다' 를 연발하며 다니는 듯 했고 어리버리함이 나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지만 '신선함'을 풍겼다고 자부(?!)해도 될까 모르겠다.
 마지막, 부장님의 한 마디가 머릿속에 남는다. "학생때는 돈 내고 공부했지? 회사는, 돈을 받고 공부하는 곳이야" 다시 타이트하고 조금 더 경제적인 시간 활용과 능력 함양을 위해 매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없이 부족한 신입사원이지만 능력으로 인정받게 되는 그 날까지,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음을 느낀다.
 그래도,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신입사원이 아니더냐. 그런데 이상황에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부서 생활을 앞두고 '그래도 제주도는 다녀와서 열심히 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때리는 것을 보니, 아직 멀었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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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갑생 2008/08/22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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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함

딴지 2008/08/18 01:23
 한동안 귀가 참 간지럽게 생겼다. 틀어진 인연을 그렇게 '비난' 하는 글 속에는 마음대로 내뱉는 감정만이 존재할 뿐, '왜 그런가' 라는 앞뒤 논리는 존재하지 않더라.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말들이 부유함에도 '유치함'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웃어 넘기기로 했다.
 인간관계는 꽤 중요하다. 허나 자신은 생각지 않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아마도, 상대는 나라는 인간을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마음으로 거친 입담을 아끼지 않을 것인즉, 그 무리 속에서 나란 존재는 '재수없는 새끼', '나이만 쳐먹은 이기적인 새끼'로 통할테니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시각을 바랄수밖에.
 나이 쳐먹고 이런 글이나 깨작거리는 것을 보니 내게 그 유치함을 받아들일 넉넉한 아량이 없나보다. 이는 나 역시 유치하다는 소리. 고맙소. 내게 이런 반성의 시간을 주었으니 말이오.
 
 
ps. 대화가 필요하다.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8월 21일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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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청바지

원씨 2008/08/17 02:11

 팀 회식이 끝난 14일 밤. 종로 한 복판에서 양복을 걸친 건장한 청년 다섯은 캐리어를 끌고 방황하다 결국 찜질방으로 향하고 말았다. 다음날 점심 약속이 잡혔던 원씨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변태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찜질방의 수면실에서 옷을 다소곳이 입고 짬을 내어 눈을 감았다가 담배 연기, 술에 쩌든 몸을 씻고 아침 일찍 찜질방을 나섰다.
 캐리어를 맡아주지 않겠다는 주인 아주머니와 약간 실랑이를 벌였기에 좁은 찜질방의 사물함 속에는 구겨진 양복과 캐리어가 사이좋게 어울려 있었으니 행색은 한 마디로 '구려' 그 자체였다.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려는 찰나, 찜질방 앞의 큰길을 막고 있는 대학생 무리가 보였다. 광복절을 맞이해 뭔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길을 기똥차게 막고 있었기에 5열 종대로 서있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야 했다.
 턱에는 여드름 세 개가 그랜다이저 합체하듯 기깔나게 혹을 형성하고 있었고 면도를 하지 못한 턱과 인중에는 거무잡잡하고 거센 털들이 삐죽거리며 튀어나와 있었다. 양복은 모두 구겨져 있었고 더불어 바지와 마이 한 쪽 구석에는 언제 스며들었는지 짙은 기름 자국이 함께했다. 머리는 대충 말려서 지마음대로 날라다니고 세수는 했건만 "관리인이 찜질방 영업을 방해하려고 엘레베이터 운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라는 종이와 함께 지하 이층에서 캐리어를 들고 높은 계단을 걸어오다 보니 금새 얼굴은 좔좔, 기름기로 물들기 시작한 상태였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흰색 와이셔츠의 카라 부분은 밤새 흘린 리터단위의 땀으로 인해 검은색 때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더군다나 찜질방 위에는 그 유명하다는 ()()나이트가 있었으니, 이건 누가봐도 밤새 춤추고 놀다가 피곤에 쩐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양아치였다. 그 와중에 5명의 산뜻한 대학생들 사이를 비집다가 발 구르기를 실수하는 바람에 캐리어와 구두 뒤축이 부딪치면서 신발이 반쯤 벗겨지는 아름다운 상황을 연출했으니. 가지가지 했다.
 
 주황색 옷을 입고 있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들에게 항변이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걸으려 했다. 나름 공부도 꽤 잘했고(!?) 이것저것 많은 짓(?)을 한 원씨이며 지금은 대한민국의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연수를 마치고 하루 논 인간이다, 다른 대기업에도 붙었으며 앞에 나가서 떠드는 발표도 그런대로 해낼뿐 아니라 책도 많이 읽으려 노력하고 나름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 머리도 빠삭빠삭 굴리는 인간이다, 뭐 이런것을 알아달라는 듯 내 행동은 거침없었지만 순간 '그렇다면 나는' 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겉모습을 보고 나를 판단하지 말라, 라는 이 말은 비단 내게만 적용하는, 남들이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었을 뿐이다. 외형적인 모습의 부족함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평소 나의 개똥철학은 때문에 거짓이었으며 역시나 나는 '나의 다른 걸 조금 봐줘' 라는 생각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을 나는 단지 내게만 적용하는 모자란 인간이었다.

 말을 멋지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허세 좋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멋지게 포장해 남들 앞에 내놓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정작 그 포장을 타인이 보는 곳에서 풀지 않는것, 아니 풀지 못하는 것은 그간 내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청바지가 찢어졌다. 전정환씨에게 과외를 넘기며 받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요새 들어 자주 빨았더니 청바지의 색이 연해지기 시작하며 주머니 밑과 무릎위에 작은 줄을 내놓고야 말았다. 살살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벌려보니 쭈욱, 하며 찢어진 길이가 새끼 손가락 만해졌다. 입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모델 꽃상곤씨는 '그게 리얼 간지이자 패션이야' 라며 멋지단다. 난생 입어보지 않았던 찢어진 청바지를 이제야 입어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 제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찢어진 청바지로 인해 느껴지는 나름의 패션 감각이 아니라 그 속에서 흉물스럽게 밖을 바라다보고 있는 수많은 나의 '털' 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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